깨달음과 더불어 사는 삶

아난존자가 부처님께서 임종을 맞게 될 때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스승이시여, 스승님이 열반하시고 나면 우리들은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기를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방일하지 말며 참회하고 정진하라."

자기의 무명 속에 갇혀 있는 법륜의 등불을 깨우칠 때, 밖으로부터 비추이는 빛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에겐 몸 안과 몸 밖의 구별이 있지만, 아무런 걸림 없는 빛이 있으니, 그것을 '무애광'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이 무애광을 빨리 깨닫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에 있는 것이요, 깨달음의 길은 결코 손쉬운 것은 아니다.

그칠 줄 모르는 용맹무사의 참다운 노력과 정진이 있어야 하며, 부처님께서도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면서도 방일하지 말고 노력하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오늘날 불교의 현실은 다분히 불교의 정법을 떠나 외형적인 의식과 기복적인 일면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불교신앙은 기복적인 양상이 결코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그 본질을 잊고 형식에 치중될 때 불교의 본질은 퇴색하기 마련이다. 우리 불자들은 일하는 생산적인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이 연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잡아함경>등 여러 경전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는 대목이 인용되는데 이것이 세상의 연기적인 상대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볏집단을 서로 마주해서 세워 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공존하고 있을 때만이 볏 짚단은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서 함께 존재해 나가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고 불교는 보고 있다.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은덕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다. 스승이 있기에 배울 수 있고 청소부가 있기에 깨끗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은 나와 본질적으로 한 몸인 것이다. <신심명>에 나오는 "진여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 는 구절이 있다.

우리 이웃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고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더불어 나누는 삶,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일깨우는 지혜의 삶인 것이다.

【법성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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