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네! 오늘날 인류 문명의 발달과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는 근원을 짚어보면 불을 사용할 줄 알고 언어를 구사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중에서 우리는 상항 말을 하게 되는데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말 한 번 잘해서 인생길 탄탄대로를 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 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좁은 문을 쓴 작가 앙드레 지드는 땅의 양식이라는 글에서 말은 거인을 때려잡아 소인배로 만들 수도 있고, 소인배를 거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산자를 무덤에 묻을 수도, 무덤에
제8장 대학 강단시절, 제 2 집필기 < 원광대학교, 전북대학교 강단시절 >일붕 큰스님의 대학강단의 시절은 1950년 대학을 졸업한 해부터 시작되었다.첫 부임한 학교가 이리에 있는 원광대학과 전주에 있는 전북대학교였다. 이곳 두 학교에서 강의를 맡게 된 것은 동국대학교 교수로 계시다가 내려가신 김포광 교수님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김포광 선생은 일붕 큰스님께서 전북 김제군에 있는 금산사에서 잠시 가르침을 받은바 있고,동국대학교 시절의 은사님으로 일붕 큰스님의 재주를 알기 때문에 그 교수님의 주선으로 원광대학과 전북대학교에서 불교철학과
《 있어야할 곳에 있는 것이 법이다 》 내가 기거하는 처소는 좀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온갖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따로 풍경화를 걸어 놓을 필요가 없다. 아름답게 자리한 오목조목한 산자락들, 그 아래 철 따라 색이 변하는 들판하며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듯 오망조망한 집들 하며 그 어떤 화가가 철마다 이렇게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조각가가 이렇게 균형 있게 조각해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자연의 신비함에 항상 감탄하며 그때마다 참 신비하게도 있어야할 곳에 있을 것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제7장 동국대학 재학시절, 제 1 집필기 < 젊은 포교법사로 인기끌어 >일붕 큰스님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거하게 된 곳은 바로 종로구 창신동 소재의 안양암이었다.이곳 포교법사로 부임하셨기 때문이다. 안양암은 50년 전통의 포교사찰로 과거에 내노라하는 무수한 법사님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일붕 큰스님이 포교법사로 부임하자 젊은 법사가 왔다고 여신도들간에 인기가 대단했다.일붕 서경보 큰스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며 웃으신다.“ 전에는 포교법사가 대개 50~60대의 노법사였거든요. 겨우 30대 초반의 내가 법사로 부임하자 신도들이 날마다 늘
새해 덕담과 오복(五福) 이야기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첫번째는,수(壽)로서 천수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의 복을 말했고,※ 두번째는,부(富)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의 복을 말했으며,※ 세번째는,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을 말했다고 합니다.※ 네번째는,유호덕(攸好德)으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을 말
제6장 월정사 강원 강사시절 < 월정사에 강사로 초빙되다>강원도 월정사로부터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속히 와달라는 공문과 전보가 왔다.일붕 큰스님은 위봉사로 달려가 법사되시는 유춘담 스님을 찾아 뵙고 월정사 강사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춘담스님께서는 무척 반가와 하시고 기쁘게 생각하시며 한국의 일대 대강사가 되라고 격려하여 주셨다. 위봉사에서 하루밤을 자고 다시 상경하여 박한영 스님께 인사말씀을 드리고 강릉행 버스를 타고 진부면에서 도착, 월정사 입구에서 하차하였더니 산중의 위덕과 학인들이 마중을 나왔다.대사는
《 지금 동행중에 스승이 있다 》 중이 목사 이야기를 하면 무엇 하지만 내가 잘 아는 목사 한 분이 있다. 나이가 몇 살 많아 목사 형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육십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그 목사님은 나처럼 젊어서 종교에 귀의 한 것이 아니고, 오십 바로 턱 밑에서 신학을 공부해서 오십 중반을 넘겨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나와는 전생에 업의 연이 길었던 듯 사십 년 넘게 종교를 초월해서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목사와 중이 만나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못하는 말이 없고 비밀 또한 없다. 이런 우리를 예수님이나 석가세존께서 보시면 잘한
제5장 개운사 대운암 시절 < 박한영 스님과의 만남>위봉사 유춘담 주지스님의 후원으로 서울 개운사 대원암에 가게 된 일붕스님은 덜컹거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붕스님은 갖가지 감회가 뇌리를 스쳤다. 세속이 싫어 머리를 깍고 중이 된 자신이 속인과 덜컥거리는 기차를 타고 경성(서울)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것에 무척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기차에 탄 사람 모두가 경성으로 가거나 그쪽으로 가고 있다. 같은 곳을 향해 같은 시간에,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똑같지만 무엇하러 그곳으로 가는가 하는 목적은
《 내 마음에 행복의 풍금을 치자 》 세기의 정복자를 꿈꾸던 나폴레옹은 행복을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그림에 태양을 그려 놓고 빛이 비추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는 저마다 행복을 찾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지 찾는 사람조차 모르며 그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우리 주변에 행복한 사람도 적은 것 같다. 서울의 명동 거리에 가서 진짜 행복한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몇 사람이나 손을 들까? 소위 출세 아니 입신양명 했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에 가서 여러분은 국회의원
제 4장 위봉사 시절 < 진진응 스님을 따라 위봉사로 >경보스님의 세속 나이 21세이던 1935년 가을 전라북도 전주군(지금의 완주군)에 위치한 위봉사(威鳳寺)에서 새로이 강원을 개설하게 되었는데 화엄사의 진진응 대강백을 청하여 모시게 되었으므로 경보 스님도 스승인 진진응 강백을 따라 그곳에서 한 철을 보내게 되었고 이 위봉사에서 사미과(沙彌科)와 사집과(四集科)를 마치게 되었다. 위봉사는 본산 절에 비하여 볼 때 규모면에서 작기는 하였지만 지대가 높고 산천이 수려한 곳에 자리잡은 도량이었을 뿐만 아니라 절 아래에는 폭포수가 있어
< 산중의 밤은 더 좋다>산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귀에 들리는 마음에 와 닿는 모든 것들이 법이요 진리임을 터득하게 된다. 억겁의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하는 산은 나처럼 말없이 침묵하며 살라 하고, 산 계곡을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실개천은 항상 나처럼 낮은 곳으로 겸손하게 살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라, 온갖 더러움을 껴안고 가는 자기희생을 말하는 듯하다. 이런 산 중을 유유자적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산등성이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묻혀오는 진한 송진 냄새와 바람과 적요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한점 욕심이나
제3장 화엄사 시절 < 지리산과 화엄사 >경보스님이 목표로 가고 있는 지리산은 반도 제일의 큰 명산이다. 그로 그럴것이 지리산은 북으로 충청북도, 서로 전라남도, 동으로 경상남도 이렇게 3개도를 걸쳐 8개군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지리산은 크게 내산과 외산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내산은 영원사(靈源寺). 벽송사(碧松寺). 실상사(實相寺). 대원사(大院寺)의 네 사찰이 있고, 외산에는 경보스님이 묵고자하는 화엄사(華嚴寺)와 천은사(泉隱寺)가 있었다.지리산 줄기는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세석평전.벽소령.만야봉을 거쳐 노고단까지
《 스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요? 》 불가에서는 인간의 세상사는 일을 부운(浮雲),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라 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한 점 구름처럼 언제 어디로 갈지도 모르며 잠시 잠깐 왔다가 가는 덧없는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도 더 많이 갖지 못해서 더 많이 오르지 못해서 슬픈 중생들이 인간들이다. 이렇게 탐욕으로 가득 채워진 중생이다 보니 나에게 법어를 청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스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요?”이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먹물장삼 걸치고 산중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겠소? 그러면 대부분
제2장 경보스님 뭍에 오르다 < 중이 된 모습에 실망한 가족들 >산방사와 법정사를 오가며 참선공부와 기도를 하다보니 어느듯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그냥 참선이나 기도를 할것이라면 제주도 안에도 10여곳의 사찰이 있어 별문제가 없는 일이겠지만 어렵게 승낙을 얻어 승려생활을 하는 몸이니 이왕이면 좀더 깊이 불교의 교리를 파고들어 교학적을 더욱 불교를 이해하고 싶었고, 올바른 참선을 하기위해서는 올바른 참선을 지도해 주실 선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재주도를 떠나 육지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여비 등 돈이 문제였다. 더욱이 수륙만
《 어머니 그 위대한 이름 》 불타의 인류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자비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한다. 엊그제 어버이 날이어서 우리 선원에서도 어르신들에게 꽃을 달아 드리고 마음의 선물을 드렸다. 옛 5~60년 때에는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오면 못 먹어 누렇게 뜬 자식 놈의 얼굴을 보며 하늘이 원망스러운 듯 부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70년대에 들어서자 풍족하지는 않지만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말 타면 종
제 2부 출가이후 승려생활 제1장 첫 출가의 발걸음 < 부인과 아들에게 마음으로 빈 용서>비록 굳은 마음으로 집을 떠난 경보청년이었지만 눈 앞에 절망에 지치고 집안살림 돕느라 피곤에 지쳐 깊이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과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던 간난애기의 생각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전생에 중이 될 팔자로 태어나 중이 된다고 하지만 아내와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경보청년은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고 기필코 훌륭한 고승이 되어 자신이 지은 죄값의 백분의 일이라도 갚겠다고 결심하고
《 거룩한 마음 》 1. 사랑함 사랑은소유하려는 욕망이 없는 것.궁극적으로는 소유물로 소유자도 없다는 걸잘 알기에 이것이 최상의 사랑 나를 내세우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른바 나란 것이 한갖 착각에 불과한 걸 잘 알기에사랑은 선택하지도 제외하지도 않는 것. 선택과 제외가 싫음·혐오·반감 등사랑의 상대적인 것들을 낳는다는 걸 잘 알기에사랑은 일체 모든 것들을 감싸는 것.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땅에 살건 물에 살건 공중에 살건 간에사랑은 치우침 없이 모든 중생들을 감싸는 것.쓸모 있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제 9장 경보 청년의 출가결심 < 부인에게 구한 출가양해 >경보청년은 조부님돠 부모로부터 출가위승(出家僞僧)을 받지 못했을망정 자신이 출가 후에 누구보다 고생이 많을 아내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지아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느날 저녁 경보청년은 아내 이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내 아내이니 요즈음 내 마음이 변화된 것을 알겠지요?”“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 싫어 집을 나가 중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요?”“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할아버님도 그러시고, 아버님 어머님도 그러시드군요 ”
《 지식보다는 지혜를 닦으라 》일반적으로 상식이란 애매하고 부동적이며지식은 명석하고 확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지식과 상식 사이에 뚜렷한 금을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상식의 순화에 의한 지식도 있으며반대로 과학적인 지식으로서 그것도 상당히 고도의지식이 상식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지식은 또 지혜로부터 구별되기도 한다.과학적 지식으로 대표되는 소위 이론적 지식은아무리 집적(集積)되어도 인생을 어떻게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 않는다.해답을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도 지식과 지혜의 구별은그다지
제8장 스님들과의 대화 < 결혼 당시 >큰스님은 인습에 따라 혼례식은 올렸지만 조혼인터에 온누리에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고야 말겠다는 뜻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별 흥미도 느끼지 못하셨음이 분명하다.다시 신부로 맞이한 규수에 대한 스님의 애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규수의 집은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처가 일대에서는 뼈대있고 화목한 지반으로 제법 소문이나 있었지. 규수도 무척 여성다웠고 상당히 예쁜편이었어요. 평소에 말수가 적은 여인으로 전형적인 한국적인 규수라고 할 수 있었어요. 남편 봉양도 잘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