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심시불(卽心是佛)

구천스님

(현) 가평 원흥사.불교일보 이사. 경기 강원 북부 지사장

『 어떤 앞못보는 이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잘못디뎌 아래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소경은 나뭇가지를 붙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한 그는 이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그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바로 손만 놓으면 당신은 괜찮아요"

그러나 소경은 나뭇가지를 더 움켜쥐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쁜 사람아. 아예 나보고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으라는 거요"

지나가던 사람은 어이가 없어 '알아서 하시오'라는 말만 남기고는 지나가 버렸다.

소경은 다시 사람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때 마침 한 스님이 길을 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스님은 소경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오. 손을 놓으면 바로 모래 바닦이니 염려치 마시고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으시오"

스님의 차분한 말에 소경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땅에 내려서자 마자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손을 놓을 걸"하고 후회하는 것이었다.

사바세계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이 소경과 다를 바가 없다.

탐 진 치 삼독의 연못에 빠져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정(九鼎)스님의 일화를 한번 더 살펴보자.

솥을 아홉 번이나 고쳐 걸었다고 해서 구정이라는 법명을 얻은 이 스님은, 출가전에는 삼베를 파는 장사꾼이었다.

하루는 시장 모퉁이에서 삼베를 팔고 있는데, 누더기 옷을 걸친 노스님이 탁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장사꾼은 스님이 안돼보여 팔던 삼베 몇필을 스님께 드렸다. 그러자 스님은 "이것이 무엇이냐. 나는 이런 것이 필요가 없느니라"하더니 물건을 되 돌려주는 것이었다.

장사꾼은 크게 감복했다. 세상 인심은 남의 물건도 탐을 훔치거나 사람을 해치기 까지 하는데, 거져 주는 물건도 마다하는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장사꾼은 팔던 삼베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도 다 버리고 스님을 따라 절로 들어갔다. 노스님은 시장서 탁발해 온 물건들을 챙기다 보니 옆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당신은 누구시오"

"저는 시장에서 만난 삼베장사꾼입니다. 스님과 같이 살고 싶어 이렇게 따라왔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살수가 없으니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시오"

"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스님을 모시면서 이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노스님은 삼베장사꾼의 고집을 꺽을 수가 없어 그만 허락을 하고 말았다.

이 날부터 삼베장사꾼은 온갖 궂은 일을 마다않고 묵묵히 해 나갔다. 이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3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는 삼베장사꾼도 스님이 하는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이 공부하고 있는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님 저에게도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스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니라."

자세한 공부법을 기대했던 이 장사꾼은 스님이 한마디 던진 즉심시불을 '짚신 시불' 즉 짚신이 부처라는 소리로 듣고 말았다. 일자무식이었던 장사꾼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스님 곁에서 벗어나지 않던 삼베장사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녁나절이 다 돼도록 나타나지 않자 스님이 찾아 나섰다. 평소 그가 나무하던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한 모퉁이에서 환하게 빛이 나오고 있었다. 스님이 다가가서 보니 삼베장사꾼이 짚신을 벗어들고 바위를 두들기며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네가 부처일 리가 있나"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짚신을 하염없이 두들기며 중얼거리다가 줄이 끊어지는 것도 모르고 있던 삼베장사꾼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 유명한 구정스님이었다.

오늘날 선방을 오가며 오도(悟道)를 염원하는 수행인들과 욕심과 근심 보따리를 던저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구정스님의 모습을 상기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구천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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