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 대선사 /전 조계종 종정

이것이 너니라

不樂二邊去

到無着脚處

忽逢無位人

正是本來汝

두 갈래에 떨어지지 말고

발붙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문득 위치 없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이것이 너니라.
-효봉선사(1888~1966)-

효봉선사 년보

1888년 평남 양덕군 출생.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대 졸업.

이후 서울과 함흥의 법원에서 10년간 법관생활을 함.

1925년(38세)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 석두화상을 은사로 출가.

1930년(43세) 법기암 뒤 토굴에서 개오(開悟)

1964년(59세) 해인사 가야총림 방장.

1958년(71세) 조계종 종정

1962년(75세) 통합종단 초대 종정.

1966년(79세) 10월15일 밀양 표충사 서래각에서 입적.

효봉선사는 참으로 대단한 선사이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법과를 나와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를 하면서 동포에게 판결을 내림에 있어서 마음이 괴로워서 판사직을 그만 두고서 人生無常을 느끼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한 스님이다.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한 만큼 수행정진을 철저히 열심히 하였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겨울 선방에서 방바닥이 타도록 뜨거운 방에 앉으면 자리를 옮기지 않아서궁둥이가 데어서 방바닥에 붙었다 한다.

이리하여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렇게 열심히 정진한 결과, 당대 최고의 선지식인 한암선와 만공선사에게 깨달음을 인정하는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그리고 좋은 글을 잘 쓰시는 법정스님의 은사 스님이기도 하다.

법정스님은 오랫동안 효봉 큰스님을 시자(侍者)로서 받들었다.

끝으로 한암선사와 만공선사의 전법게를 올립니다.

-마음달-

以 包雲 號之 贈 元明禪師 仍示以一偈

포운이라는 호를 원명선사(효봉)에게 주며 일게를 보이노라

茫茫大海水中泡

망망한 큰 바다의 물거품이요

寂寂山中峰頂雲

적적한 깊은 산꼭대기 구름이네

此是吾家無盡寶

이것이 우리집의 다함없는 보배거니

灑然今日持贈君

시원스레 오늘 그대에게 주노라

世尊應化 2963년 丙子 十月 十一日

세존응화 2963년(1936년) 병자 10월 11일

蓬萊 釋漢岩 書干 五臺山 上院寺室中

봉래 석한암은 오대산 상원사 실중에서 쓰다

爲 船翁 法子

선옹법자(효봉)에게....

無邊正道理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를

今付船翁子

이제 선옹자에게 부촉하노니

駕無底船

밑이 없는 그 배를 타고

隨流得妙也

흐름을 따라 묘한 법을 나타내라.

湖西 德嵩山 金仙洞 小林草堂

호서 덕숭산 금선동 소림초당에서

佛紀 2964년(1937년) 丁丑 陰 正月

불기 2864년(1937년) 정축 음 정월

滿空月面 漏

만공월면 보잘 것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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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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