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임진년 한해는 참으로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여러가지로 복잡한 일,놀랄일들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이제 계사년을 맞았습니다. 작년 임진년은 용의 해였는데 금년은 뱀의 해인 계사년입니다.우리 동양사람들은 12지가 상징하는 동물로 그 해의 길흉을 판단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행위,즉 업에 의하여 운명을 주체적으로 창조하는 것이지 외부의 원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운명론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말은 인생의 주체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외부의 영향과 전혀 무관하다고하는 것은 아닙니다.인연이란 바로 주체적인 작용을 하는 자기자신의 행위와 연의 작용을 하는 객체,즉 외부의 영향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자기자신이 삶이 주인임을 철저히 자각함과 동시에 주변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독불장군>이란 말이 있듯이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요,혼자서만 잘한다고 잘살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애를 써서 농사를 지으려해도 하늘에서 한방울의 비도 뿌려주지 않는다면 의욕만으로 농사가 잘될수는 없습니다.피땀흘려 가꾼 농작물이라도 인력으로 어찌할수 없는 홍수에도 속수무책입니다.대자연의 섭리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정복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이 대자연의 섭리에 잘 적응하는 길이 바로 자연과 더불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해마다 육갑으로 또는 동물로 한해를 표시해서 생활에 활용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참조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될 것입니다.특히 우리 선조들은 오랜 역사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천지 자연의 이치에서 터득한 여러가지 삶의 지혜를 전통속에 간직해 왔던 것입니다.

금년을 뱀의 해라고 하는 것은 금년이 육십갑자로 계사년이기 때문입니다.육십갑자란 육갑으로 하는 것으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라고하는열개의 글자로 하늘의 기운을 나타내 천간(天干)이라 하고,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등 열두개의 글자로 땅의 기운을 나타내 지지(地支)라고 하여,이 열개의 천간과 열두개의 지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방위로 나타내는 기호로도 쓰이고,운명을 예지하는 점술에도 사용되고,계절.달을 표시하기도 하고,시간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하는 등 매우 다양하게 쓰여 왔고 지금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서가운데 구약은 유태인들의 신화를 모은 것으로 거기에 창세기하는 것이 있습니다.창세기는 여호와라는 신이 최초에 천지만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고,그중에는 기독교인들이 인간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담과 이브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창세기에 의하면 여호와라는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고 여러가지 짐승과 나무를 만든 후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그 이름을 아담이라 하고 지상의 모든 동식물을 다스리게 했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아담 혼자서 사는 것이 외로울것 같아 그가 잠든 사이에 오른쪽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는데 그녀가 바로 죄 많은 여인의 조상 하와(이브)입니다.

여호와는 자기 창작품인 세상만물과 특히 아담과 하와에 만족하여 그들을 에덴이라는 낙원동산에 살게 했다고 합니다.이 동산은 그야말로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는 것입니다.그곳에는 갖가지 과일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여호와는 그 중에서 한나무의 열매만은 두 남녀에게 따먹지 말라고 엄히 당부를 했습니다.

이른바 선악과라는 과일이었습니다.사과나무라고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고 구약에는 그냥 선악과라고 되어 있는데 이 과일은 절대로 따먹어서는 안된다는 금단의 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와에게 뱀이 다가와서 이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했고,하와는 마침내 그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만 먹은것이 아니라 아담에게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벌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고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기때문에 여자는 남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되고 어린애를 낳고 기르는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뱀은 저주를 받아 평생 땅을 기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쫒겨난것은 순전히 뱀의 유혹때문이다.인간은 이때부터 고통을 받게 되었다.그러므로 뱀은 사탄,악마와 같은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원죄(原罪)라고 하는 것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여호와의 노여움을 산 것을 말합니다.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도 이 원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불자님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호와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땅에 동물과 식물을 다스리는 주인으로 만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여호와는 분명 실수로 사람보다도 더 지능이 높은 뱀을 만들었거나 아니면 인간을 애초에 어리석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우리 선조들은 뱀을 신성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집안에 구렁이는 <업구렁이>라고 하여 재산을 지키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고,이 구렁이가 집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큰 구렁이를 영물로 여겨 함부러 잡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건강에 좋다는 바람에 사탄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까지도 마구 잡아 요즘은 뱀의 씨가 마를 지경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불교경전이나 불교 설화 가운데는 나쁜 업을 지은 과보로 뱀의 몸을 받는 경우가 있고,우리 육신에 대한 비유로써 뱀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설화입니다. 금강산 돈도암이란 암자에 수십년 동안 수도를 하여 곧 견성을 하게된 홍도란 스님이 있었는데,마침 병이 들어 며칠간 방에만 있다가 그날은 하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 소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옷을 벗어서 한켠에 놓고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벗어 놓은 옷을 날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스님은 화가 나서 신경질을 부리며"부처도 소용이 없고 팔부신장이란 것도 믿을 것이 없구나.나처럼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도 그렇고,바람까지 불어서 병든 나를 괴롭히니 이래가지고 불교에 무슨 영험이 있다고 알 것이냐!"하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팔부신장에게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밤 꿈속에 토지신이 나타나서 현몽하기를,"네가 중노릇을 하고 공부를 하여도 헛수고노라.불자는 자비로써 집을 삼고 인욕하는 것으로 옷을 삼으라고 하였는데 그까짓 병을 좀 앓고 바람에 옷을 날렸다고 진심을 내다니 그래가지고 무슨 공부를 하였다고 할 것이냐?부처님도 정한 바 업은 면하지 못하고 과보를 받으셨거늘 너 같은 초발심 비구가 무엇이 그리도 대단하다고 그러느냐.네가 병이 난 것도 네 업보요,바람이 분 것은 도량신이 너의 공부를 시험해 보려고 한것인데,그걸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려 팔부신장과 도량신을 불안케하니 그 무슨 체통없는 짓이냐?"하고 꾸짖더니만 느닷없이 구렁이 껍데기를 씌우는 것이었습니다.꿈을 깨고 보니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이미 구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그래서 할 수 없이 구렁이가 된 홍도스님은 돌각담 속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수행승 한분이 돈도암을 찾아갔더니 석가래같은 굵은 구렁이 한마리가 마당에서 기어 다니고 있으므로 그 스님은 한편으로 깜짝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합장하고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을 세번 외우고서,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 요지를 일러 주었습니다.이 말은 (만일 사람이 삼세의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이 모두 마음으로 지은 것임을 알라)하는 뜻입니다.

그러자 이 구렁이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꼬리를 아궁이에 넣어 재를 묻혀 가지고 글을 쓰더랍니다.그 내용은 구구절절이 성낸것을 후회하고 다른 이들에게 진심을 내지 말도록 당부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설화가 우리에게 탐진치 삼독 가운데 진심,곧 성낸는 것이 얼마나 독이 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업보로 뱀이 된 이야기가 수없이 많은데 한결같이 좋지 못한 업을 지어서 뱀이 된 이야기입니다.

독사비유경이나 안수정등에 나오는 비유에서는 뱀은 지.수.화.풍의 4대룰 상징하고 있습니다.우리 중생들이 애지중지하는 이 육신은 본래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 인연따라 일시적으로 모인 것일뿐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서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우리 인간은 마치 네마리의 독사를 품고 다니는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불자여러분! 올해가 계사년이므로 지금까지 뱀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습니다만 사실 우리는 세상 그 무엇도 그것 자체에는 선과 악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뱀이 징그럽다 하지만 뱀땅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보약노릇도 하고 땅꾼들은 바로 뱀이 밥줄이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모두가 불성을 소유한 고귀한 생명입니다.그러나 인간이 인간의 생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서 본질과는 다르게 악의 화신이 되기도하고 선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기독교인들은 뱀을 사탄이라고 하지만 아프리카 어느 종족은 뱀을 신으로 섬기고,우리 조상들도 구렁이를 <업>이라고 하여 재물을 불리는 좋은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뱀은 뱀이지 사람이 좋게 본다고 좋아지고 나쁘게 본다고 나빠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는 단순히 뱀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고 진실을 파악하는데는 우리의 선입관이나 관념이 오히려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옛스님은"지도무난(至道無難)이나,유염간택(惟厭揀擇)이라.단막증애(但幕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한 도를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오직 차별을 꺼릴 뿐이다.단지 스스로 좋다,나쁘다 하는 분별심만 내지 않으면 도는 명백히 들어 난다>하는 말입니다.

이 글은 승찬이라는 중국의 스님이 신심명(信心銘)에서 밝힌 유명한 법문인데,사실 우리가 사물을 볼때나 앞일을 예견할때나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면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용의 해다.뱀의 해다.호랑이 해다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정초가 되면 신문이나 텔레비젼등을 통해 수선을 떱니다.그러나 그것보다는 우리가 새로 맞는 한해를 어떤 자세로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왕이면 좋은 방면으로 생각합시다. 금년은 뱀의 해이니 만큼 뱀의 좋은 점만 본받는다면 뱀이 곧 선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가 뱀으로 부터 세가지의 바라밀을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첫째는 지혜바라밀이요,둘째는 인욕바라밀이요,셋째는 선정바라밀입니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파충류입니다.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따뜻한 봄철을 기다리는 슬기입니다.몸에 털이 없는 찬피동물이므로 겨울의 혹한을 견딜수 없기 때문에 겨울 한 철을 땅속에서 죽은듯이 지내는 것입니다.이 얼마나 지혜로운 생활입니까?

우리도 올 한해를 이처럼 지혜롭게 삽시다.금년은 그 어느해보다 불안한 소지가 많은 해입니다.가뭄에 내리는 소낙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감로수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면 산사태가 나고 물난리가 납니다.그러므로 뱀이 한 겨울에 땅속에서 슬기롭게 봄을 기다리듯,기다릴줄 아는 지혜로운 한해가 되도록 우리 함께 반야바라밀을 실천합시다.

기다린다는것은 강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우리 단군설화에 등장하는 곰은 인욕을 감내해서 사람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석달열흘을 기다릴수 없어 동물의 몸을 벗지 못했습니다.우리민족은 곰의 후예로 자처하는 인욕할 줄 아는 민족입니다.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곧 인욕바라밀,반야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뱀은 찬피동물입니다.우리는 지난 한해동안 너무 가슴 뜨겁게 하고 살았습니다.흥분이 연속되는 생활이었습니다.끼니가 어려운 사람도 있고 대통령선거의 열풍에 휩슬려 제정신을 놓고 사는 이가 있었고,온 국민이 경제의 불황에 하루하루를 버티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슴을 식히고 감정을 가라 앉히고 자기의 주변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어느때보다도 강도가 날뛰고 사회악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여러분들이 좀더 잘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동안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겉은 번드르르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숙아들이 되었습니다.이제는 자녀들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불자여러분! 선정바라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밖에다 쏟던 관심을,돈벌이에 쓰는 관심을 가정으로 돌리고,다시 자기자신으로 돌리는 것이 곧 선정바라밀입니다.그러자면 냉정한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흥분해서는 선정이 이루어질수 없고,밖으로 눈을 휘번득거려서는 마음이 안정될 수 없습니다.뜨거운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가운 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같이 소망하는 것을 행복입니다.그러나 이 행복은 절대로 밖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부처님의 화현을 보듯 권력이나 재물이 절대 조건일 수 없다는 사실을 권력과 부를 소유했던 사람들의 철저한 몰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타산지석이란 말처럼 우리는 이 교훈이 바로 우리 자신의 것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다같이 계사년 뱀의 해를 맞아 뱀이 꽁꽁 언 개울물이 녹아 졸졸 흐르기를 기다리면서 한겨울을 땅속에서 동면하듯 금년 한 해를 지혜로운 생활,인욕하는 생활,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생활로 보람있게 꾸려갑시다. 그리하여 다같이 기필코 바라밀을 성취합시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편> 법천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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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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