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이 경귀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환경만 만나게 되면 자만심이 생겨서 남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사치스러워져서 탈선하게 되므로 근심되는 일, 어려운 환경을 싫어하지 말고 오히려 근심과 곤란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말인데, 요즘같은 세태에서는 아주 적절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들리는 것이 기쁜 소식보다는 슬픈 소식, 신나는 일보다는 기죽이는 일, 미담보다는 추한 이야기가 흔해진 세태가 아닙니까? 룸싸롱 여종업원 살해사건, 연예가의 히로뽕 추문사건, 새벽마다 벌어졌던 주택가의 연쇄방화사건, 학교주변 불량배들의 폭행사건 등 텔레비젼이나 신문기사는 온통 사회의 추한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고 장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치와 낭비가 극에 달했고 퇴폐풍조가 외국에 못지않게 성행하고, 이성과 도덕을 마비시키는 마약이 일반가정에까지 파고 드는 현실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중고생들이 환각제를 흡입하고 환각상태에서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벌려 귀중한 생명을 빼앗는 현실, 중고생의 과반수가 학교주변의 불량배들에게 강도, 폭행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는 충격적인 현실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여러분도 이미 텔레비젼을 통해서 수없이 보고 들었을 것이므로 굳이 그 심각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이런 오염된 사회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과연 정상적인 인격자로 성장할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봄철은 젊은이들에게 탈선의 유혹이 강해지는 계절인데, 이들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사회환경 문제가 이처럼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늘은 청소년,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극도로 좋지 못한 환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 여러분의 자녀, 손자 손녀들은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잠자고 눈뜨면 텔레비젼 화면에 비치는 것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는 소식이 아니라 좌절과 절망, 그리고 강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화면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본드나 부탄가스를 환각제로 사용하고 환각상태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시청하는 여러분의 자녀들은 그러한 화면을 통해서 "나는 저래서는 안되겠다"고 각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드나 부탄가스를 마시면 얼마나 좋기에 저렇게들 야단법석일까? 나도 한번 해볼까?> 이런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해 본 일 있습니까?

내 자식 내 손주야 어디 그럴라고, 그런 애들은 어딘가에 불량끼가 있어서 그렇지 내 가족에게는 해당되는 일이 아닐거야, 하고 대부분은 이렇게들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불량끼가 따로 없고 불량청소년이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그럴 소질이 있고 유혹을 받으면 넘어가게 됩니다.

요즘 애들처럼 불평 불만이 많았던 시대는 일찌기 없었을 것입니다. 무언가에 대한 불만족이 바로 현대말로 스트레스고 그것을 탈출하려고 무언가 좀 색다른 것을 찾는 것이 탈선이지 탈선이라고 별것이 아닙니다. 조그만 기회라도 주어지면 나도 한번 해보자고 하는 것이 호기심이요, 호기심이 맹목적인 탈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텔레비젼에서는 친절하게 본드를 비닐에 싸서 코로 들이마시는 방법, 본드를 마시면 몸에서 냄새가 나고 코 속이 헐지만 부탄가스를 마시면 그런 부작용이 없다는 등 환각제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짓들까지 하고 있으니 그걸 보는 청소년들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빈다. 이런 사회환경에 우리는 청소년들은 무방비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텔레지변에 나오는 광고도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허영심만을 북돋아주는 것들 뿐이고 길거리에 나서면 극장 포스터, 유흥업소의 입간판, 신문가판대에도 벌거벗은 여자들이 눈웃음을 짓고 있습니다.거기에다가 부모들은 녹음기처럼 "공부하라, 공부하라"만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청소년들은 완전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온갖 유혹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해한 환경이 하루아침에 개선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여러가지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난 병리현상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대안이 나온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깨끗해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채념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비록 우리 주변에 이처럼 청소년들을 탈선시키기 쉬운 좋지 못한 요소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만일 청소년들에게 원대한 꿈이있고 신념이 있다면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구체적인 꿈이 없고, 미래에 대한 신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너의 꿈이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서슴치않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횡설수설하는데 어떤 녀석은 "꿈은 가져서 무엇합니까?" 하고 꽤 진지한 태도로 대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애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에 "아버지는 어릴 떄 가졌던 꿈을 이뤘나요?" 이루지 못할 꿈이라면 애초부터 가질 필요가 없는 것아닌가요?" 하고 당돌하게 대꾸하기도 한답니다.

"꿈을 가져서 무엇합니까?" 하는 대답이 명답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도 "꿈을 깨라"하시지 않았습니까? 반야심경에 "원리 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뒤바뀐 꿈 생각을 멀리 여의다"라는 이 말은 바로 <꿈을 깨라!>하는 말씀입니다.

"꿈을 가져서 무엇합니까?" 하는 녀석이 <뒤바뀐 꿈 생각>을 멀리 여의고 관자재보살처럼 도가 통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야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아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그런 말을 하거나, 인생의 방향설정을 못하고 방황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 건전한 꿈이 없습니다. 기껏 꾼다는 꿈이 탤런트가 되겠다거나 야구선수가 되겠다거나 아니면 인기 가수가 되겠다는 정도입니다. 물론 탤런트나 야구선수, 가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가 인기만을 바란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나 애초부터 그런 꿈도 없는 애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된데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물질문명과 경제적인 풍요에 알맞는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했기 떄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시대에 알맞는 인생의 목표, 가치기준이 머처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나왔따고 볼 수 있습니다.

옛 성현의 말씀 가운데,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춥고 배고파야 도 닦을 마음이 난다는 뜻입니다. 보낼 이말은 수도하는 스님들이 세상 이익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여 나온 말입니다.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게을러져서 공부할 생각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춥고 패가 고파야 '이 놈의 인생, 고달픔 인생, 어떻게 하면 이 고생을 면할 수 있을까' 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수도를 하게 되고 그래야만 마침내 도를 깨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란 단순히 불도를 닦는다거나 수양을 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는 길이요, 이 길은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을 찾을 마음이 난다,하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춥고 배고프다>라는 말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 춥고 배가 고픈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환경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생사와 직결된 추위와 배고픔이므로 이를 통해서 다른 모든 역경을 표현한 것 입니다. 춥고 배가 고파야 도심이 난다는 옛 말을 현대적으로 말하면<역경을 겪어보아야 참다운 길을 찾게 된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보왕삼내론의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경귀나 <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난다>는 말이나 다같이 사람은 역경을 겪어야만 진실로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청소년들이 꿈을 상실하고 살게 된 까닭이 역경을 모르고 성장한데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들이 피땀흘려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옷 사입히고, 남에게 기죽을까봐 해달라는 것 다 해주다보니 부족한 것이 무엇인 줄 모르고 성장한 까닭에 자기의 꿈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냐? 과보호한 탓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 온 탓으로 그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고 사달라는 것은 모두 사주는 것이 부모 노릇을 잘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배부르고 따뜻하고 부족한 것이 없으니까 자기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낼 염두도 내지 않고, 덩치만 컸지 정신적으로는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꿈이 없고 신념이 없고,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숙아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살아있는 이로하가 있습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굳하게 성장한 입지전적인 실화가 바로 금년 대학졸업식장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금년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수석졸업자는 이재혁군인데 이군은 정상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청년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시각장애자라는 말은 장님 뿐만 아니라 아주 장님은 아니라도 시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을 모두 아울러서 하는 말이지만 이군은 태어날떄 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배냇장님이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반학생도 해내기 어려운 우수한 성적을 어덩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이군은 "암흑은 영원한 암흑이 아니고 장애가 영원한 장애가 아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하루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이같은 영광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군이 피아노와 접하게 된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인데, 어머니가 음악을 통해 취미활동도 하고 밝게 성장 할 수 있도록 피아노 교습을 받도록 했던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군은 <하얀 건반>과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이 안보이다 보니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교사가 쳐주는 음을 기억했다가 치거나 한 음씩 따라 치다보니 한곡을 완전히 소화하는데도 무려 한달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이군은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고 자신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나 음악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여건이 안된 장애자를 도와주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하는데, 이군은 '음악을 하는데는 장애가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밝은 소식이 있습니다. 금년도 단국대 동양학과를 수석졸업한 학생은 오순이양인데 <발의 화가>로 알려진 집념의 학생입니다.

오양은 5살 때 집앞 철길에서 놀다 기차에 치여 양팔을 잃고 말았으나 발을 손 대신 사용,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동양화를 그려 각종대회에 입상했으며 지난 85년 전국남녀 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는 사군자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오양의 눈물겨운 애기가 당시 일간신문에 보도되자 단국대 총장이 중국화가 '리치마오'씨가 제정한 장학금의 첫번째 수상자로 추천하여,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매학기 20만원씩의 장학금을 받다가 단국대 동양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는 학비와 기숙사비 일체를 지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양은 지난 86년에 대학에 들어온 후 학과공부도 열심히 해 4년간 줄곧 과수석자리를 지켰으며, 동양화 공부에 매진, 이제는 상당한 경지에 와 있다는 주위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졸업과 동시 대만유학을 가게 되는데, 유학을 통해서 이제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모색해 보고 싶다는 희망에 차 있습니다.

또한 어느정도 그림공부가 끝나면 교단에 서서 불행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오양은, "어렸을 때는 세상 원망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없이 포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자기가 받은만큼 베풀기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서 이미 읽었거나 또는 오늘 여기서 처음 들었거나간에 이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두 남녀의 꿈과 강한 신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남보다 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오늘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꿈과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꿈과 신념은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도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는 오늘의 청소년들 대다수가 상실해 버린 꿈이요 신념이기에 더욱 고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저는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마치 어린 나무가 자라서 성목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들과 비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달에는 식목일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식목일에는 만은 나무를 심어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산야에 식목일을 기해서 심은 나무를 숫자로 따지면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어린 묘목들이 반듯하게 성장한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심는다고 다 탈없이 자라서 성목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그루의 어린 묘목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몇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묘목이 자라는 데 필수적인 조건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흙 . 물 . 비료 . 햇빛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적당한 땅을 골라 심어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적당한 비가 내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비료도 적당히 주어야겠고 따뜻한 햇빛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숙성하는 가지는 적당히 잘라주어야만 비바람에도 견디고 곧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게 되는 것이 나무입니다.

이처럼 한그루의 묘목도 여러가지 연이 맞아야만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법인데 하물며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어디 한 두 가지 뿐이겠습니까?

몇가지만 들어보면, 신념 . 지혜 . 애정 . 절재등 이와같은 연이 갖추어져야만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묘목이 흙 속에 뿌리를 굳게 내리지 못하면 바람에 흔들려서 죽고 말듯이 청소년에게 신념이 없으면 주위의 사물에 현혹되어 갈팡질팡하게 될 것입니다.

묘목이 적당한 물과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무성한 잡초들 틈에서 생존할 수 없듯이 청소년도 지혜가 없으면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하고 말 것입니다.

또 묘목에게 햇볕이 필요하듯이 청소년에게는 따뜻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묘목을 곧고 바르게 기르려면 적당한 시기에 가지를 쳐주는 전지작업이 필요하듯 청소년이 탈선하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인욕심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성장에 필요한 신념 . 지혜 . 애정 . 인욕은 청소년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나 어른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묘목이 땅에다 심어놓는다고 해서 다 성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특히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첫째로 꿈, 곧 신념이 없습니다. 신념이란 꿈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의 청소년들은 인생의 목표를 정하지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신념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를 비롯한 나이 먹은 사람들의 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이처럼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탈선하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눈이 먼 이군이 오직 피아노 건반만을 두드리며 꿈을 키우듯, 오양이 발로 그림을 그리면서 좌절하지 않듯, 우리 청소년들도 미래에 대한 꿈에 의지한다면 환각제와 각종 음란 퇴폐 문화의 늪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는 스스로 명백해졌습니다. 배부르고 따뜻한 옷을 사입히고, 사달라는 것을 부족함 없이 사주는 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꿈과 신념을 심어주는 어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탈선하기 쉬운 사회환경 가운데 여러분의 자녀들은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춥고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서 꿈도 신념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유혹에 십게 넘어가고 맙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유해한 환경을 시정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개선해나가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신념을 갖도록 하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다같이 참다운 불자가 되어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자녀 . 우리의 청소년들이 부모로부터 어른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꿈을 발견하고 나도 그렇게 되어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모든 청소년들이 혼탁한 사회를 탈선하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가도록 합시다.

보왕삼매론에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함으로써 살아가라> 하혔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녀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말고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꿈과 신념을 심어 주는데 교육의 목표를 둡시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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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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