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겁적집죄 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 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 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 滅盡無有餘

양력으로는 이미 신묘년이 되었고 음력으로는 이제 경인년은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무엇이든지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게 우리 중생심 아닐까요? 특히 나이를 먹고 보면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이 곧 죽는 날에 다가가는 것이니만큼 아무리 재미없는 일년이었다고 해도 한 해를 마감하는 일이 마냥 홀가분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 해를 마감하고 보다 더 밝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기도와 참회>라는 제목으로 몇마디 말씀을 드리고저 합니다.

우리가 불보살님들이나 신중님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목적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바라는 것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바램이 꼭 이루어진다고 하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서 기도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보는데,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신도님들 가운데는 자녀가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분도 있습니다.그런데 만일 아들 딸이 대학에 꼭 합격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굳이 기도를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에 불보살님이나 신중님의 도움을 청하지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텐데 꼭 그렇게만은 되지 않으니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요?그렇지요? 물론 자기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 국가를 위하고 인류 전체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홍서원을 발한다든가 조석으로 예불을 모시면서<남북통일 속성취>를 기원하는 것은 자기자신만의 작은 소원을 비는 것은 아닙니다.이런 경우 불교에서는 소원이라 하지 않고 서원 또는 발원이라 합니다.

법장비구는 마흔 여덟가지의 서원을 세우고 수억겁의 수행을 거쳐서 극락세계를 건설하여 그곳의 부처님이 되셨고,모든 불보살님은 열가지의 서원을 세워 그 소원을 이루어 불보살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크건 작건 간에 기도하는 목적은 소원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합니다.우리 절 뿐 아니라 다른 절에서도 대부분 삼동결제 기간 동안 백일기도를 모시고 있는데 전국의 수많은 불자들이 백일기도에 동참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무언가를 소원하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도님들이 바라는 소원은 인류의 행복이나 불국토의 건설이나 <남북통일 속성취>와 같은 거창한 명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대개가 자기자신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한 소원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그렇지요?

건강하게 해주십사 하는 소원,입학시험에 꼭 붙게 해달라는 소원,장사 잘되게 해달라는 소원,어떤 분은 여분으로 사놓은 아파트가 빨리 팔리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소원들을 불보살님이나 신중님들은 모두 다 들어 주느냐?물론 여러분의 정성이 지극하기만 하면 다 들어 주십니다.그건 의심해서는 안됩니다.경에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源功德母)라 하지 않습니까?믿음은 도의 원천이요,믿음이라는 씨앗이 튼튼하지 않으면 도라고 하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면 잘 이루어 지는데 어떤 사람은 남보다 더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도 소원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렇지요?

똑같은 부처님이요,똑같은 보살님이요,똑같은 신중님인데 누구는 소원성취를 시켜주고 누구는 외면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같은 불자인데 왜 차별을 하시는가?시주가 적어서일까?아니지요.사실은 불보살님이나 신중님이 사람 차별을 하는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신도님의 마음가짐에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참다운 기도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긴가민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소원이 이루어질까 아닐까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이 확신은 자기의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아니라 불보살님의 대자대비를 믿는 확실한 신심이라야 합니다.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므로 나를 도와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결과에 대한 승복도 따르는 확신입니다.중생들의 소원 가운데는 진실로 자기에게 이로운 소원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을 해롭게 만드는 소원도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믿는 것입니다.이런 믿음을 가지면 비록 우리들이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소원을 발하는 경우라도 불보살님들은 그 결과를 유익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불보살님들은 나를 도와주신다고 하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불에 뛰어들어도 타지 않고 물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게 불보살님이 도와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그런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관음경>이라고 하는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만일 한량없는 백천만겁 중생이 여러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면,그는 혹시 큰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는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 때문이며,혹은 큰 물에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며..."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할 때면 이처럼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신도님들은 확신을 갖고 관음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서 한다든가,기도를 모시기는 하지만 불안해서 이절 저절에다가 기도동참을 해놓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더러는 점쟁이 집을 드나들기도 하는데 이는 확신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기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신도님들은 오늘부터라도 불보살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십시요.

그러나 이 확신은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불보살님이나 신중님의 위신력이 나를 이롭게 한다는 확신입니다.그러므로 꼭 내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사!하는 소원이어서는 안됩니다.왜냐하면 내 자신의 소원이 잘못 생각한 소원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해치고 나만 잘되게 해달라는 소원은 결국 내자신에게 해로운 소원입니다.그것은 자리이타의 소원이 아닙니다.진실로 나에게 이로운 것은 남에게도 이로운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무명에 끌려 탐진치 삼독심을 낳고 이 삼독심에 가리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때문에 잘못된 소원을 가지는 수가 많습니다.

이 잘못된 소원은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지극한 정성을 들여서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대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소원성취는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불보살님이 이런 잘못된 소원을 가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진정 도와주시려고 하신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보살님의 대자대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불보살님의 지혜를 믿고 무한한 방편을 믿는 완전한 믿음입니다.부처님의 대자대비에 맡기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만 후회없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마음이라야 됩니다. 오직 한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모든 정성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이 기도성취의 비결입니다.기도건 염불이건 참선이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지 않으면 불보살님과 통화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보살님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계십니다.그러나 가장 가까이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이 마음속의 부처님은 일념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잡념을 가지고서는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오직<된다>는 일념으로 기도를 하십시오.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옛날에 어떤 늙은 할머니 한분이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부르다가 어느날 아침에 잠을 깨고 나서 다시 염불을 하려고 하니 날마다 부르던 <나무아미타불>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며느리에게 "내가 매일 무엇이라고 염불을 하드냐?"하고 물었습니다.그러자 심술궂은 며느리는"저건너 김첨지라고 하셨잖아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이 노파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대신에 심술궂은 며느리가 가르쳐준데로 <저건너 김첨지.저건너 김첨지>하고 열심히 김첨지를 불렀는데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김첨지를 불렀던지 얼마 후에 노파는 자기 마음가운데서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뵙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장엄염불 가운데 이런 게송을 들어 보셨지요?보조국사가 누님을 위해서 지었다고 하는 게송인데 아마 들어는 보았어도 뜻은 잘 모를것입니다.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은 어디 계신가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絶莫忘) 마음 끝에 꼭 붙들어 놓지말고 생각하되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생각 지극하여 생각없는 곳에 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눈.귀.코.혀.몸.뜻에서 자금광을 발하리라.

아미타불은 어디 계실까?아미타불을 잠시도 잊지않고 오직 일념으로 생각하다가 생각없는 곳에 이르면 바로 그곳에서 자금광을 발하게 된다-이 말은 극락에 가지 않고도 바로 아미타불을 뵙게 된다는 뜻입니다.자금광은 자마금색,부처님의 몸빛깔인 붉으레한 금빛을 말합니다.

며느리가 <저건너 김첨지>라고 가르쳐 주었건 어찌하였건 노파는 오직 한마음으로 정진했던 것입니다.그러니 입으로야 무슨 말을 하던 무슨 상관입니까?저건너 김첨지를 일념으로 생각했다고 해도 그 생각이 오직 한마음에 이르면 결국 부처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 든 게송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보조국사는 고려시대의 훌륭한 스님이신데 이 스님께 누님이 한 분 있었는데 보조국사가 계시는 절에 자주 놀러 왔다고 합니다.그런데 절에 와서도 농담하고 놀기를 좋아했으므로 사람들이"절에 와서 공부는 안하고 잔소리만 하느냐"고 나무라자"내 동생이 도인인데 무슨 걱정이냐.극락갈때 동생의 발목 잡고 가면 될 것 아니야"하고 쏘아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보조국사는 시자를 시켜서 누님에게 저녁밥을 드리지 말도록 했습니다.저녁 공양이 끝나고 보조 국사는 태연하게 누님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누님,배가 부르지요?" 그러자,누님은 말하기를, "밥은 자네가 먹고 내 배가 왜 부르겠는가?" 보조국사는 대뜸 "그러면 염불은 내가 하는데 극락은 누님이 어떻게 갑니까?"

그때야 누님도 크게 깨닫고는 말하기를"먹는 것도 각각이고 입는 것도 각각이듯 염불도 각각이고 극락도 각각이네"하고는 <어떤 방법으로 염불을 하여야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가?>하고 묻자 보조국사가 가르쳐 주신 염불방법이 그 게송입니다.

앞서 <저건너 김첨지>를 부른 노파 이야기는 무슨 염불을 하느냐,또는 무슨 기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한마음이 되었느냐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입니다.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지극한 정성을 드리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속담인데 지극한 정성이란 곧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소원성취만을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닐까요?

우리 마음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부처님도 보살님도 대화가 통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오직 한생각 뿐인 한마음이 되면 바로 그 자리는 부처님 마음과 한자리요,바로 그 자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중생 각자가 본래부터 간직한 지혜>즉 불성자리이기 때문입니다.그 자리를 보조 국사는 <육문상방자금광>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직 한마음을 갖는 것은 기도하는 데만이 아니라 매사에 그렇습니다.성공은 곧 정신을 통일하지 않고는 이뤄지지 않습니다.여러분은 단군설화를 아시지요?다 아시겠지만 요즘은 기독교인들이 우리 조상마저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어거지를 씁니다.

우리 조상은 불교에서 제석천왕이라고 하는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들인 환웅(桓雄)과 웅녀(雄女)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단군왕검이 아닙니까?

삼국유사에 보면 우리의 조상인 단군왕검은 어머니가 본래는 곰이었다는 것입니다.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세상을 교화하자,그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같은 굴 속에서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원컨데 저희들도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빌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찌나 간절히 사람되기를 소원하는지 이에 감동한 환웅은 그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자루와 마늘 20통을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되리가"하였더니 곰은 21일 만에 사람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근신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똑같은 쑥과 마늘을 먹고서도 곰은 사람이 되었고,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인내심을 말하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나 참는다는 것도 마음이 하나로 뭉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곰은 일구월심 꼭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간절한 소원 오직 그 한마음만을 가졌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게 된것이 아닙니까?

또한 이 단군설화는 비록 환웅도 신이지만 신이 마음대로 아무 조건없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따라야만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행위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지 신이나 부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내 마음이 얼마나 지극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옛 고사에서 만이 아니라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불자들 가운데서 성공을 한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마음을 하나로 뭉쳐서 오직 한마음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화두라는 것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이 화두는 다른것이 아니라 오직 한마음을 한군데에 묶어두기 위한 수단입니다.그러므로 기도를 성공적으로 회향하려면 반드시 한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째로 진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면 참회지 진참회는 무엇이냐?형식적으로 하는 참회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라야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기도와 참회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요?그런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참회는 기도성취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필수요건입니다.왜냐하면 참회는 업장을 녹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중생들은 두터운 업장 때문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업장이란 무엇입니까?글자 그대로 장애물이 되는 업입니다.여러분은 텔레비젼에서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을 보셨지요?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선수들이 그것을 뛰어 넘어 목표지점까지 가장 빨리 달리는 선수가 우승을 하는 육상경기를 장애물경주라고 하는데 더러는 장애물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는데도 장애물경주의 장애물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무슨 일이 잘 안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공부를 하는데도 장애가 따릅니다.마장(魔障)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인생의 장애물은 바로 업에 의한 것입니다.그래서 업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무슨 일이 잘 안되거나 아주 재수없는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업장이 두터워서>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업이 실패를 하거나 무슨일이 잘 안되면 사탄이란 마귀가 들어서 그리 되었다고 믿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벌을 내려서 그리된 것처럼 생각합니다.옛날 우리 조상들은 묘자리를 잘못써서 그런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그런데 이 사주팔자라는 것도 왜 그런 사주팔자를 타고 났는냐를 생각해보면 결국 다 자기자신의 업장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이란 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지 다른것이 아닙니다.입으로 남을 헐뜯고,욕하고 이간질하고,몸으로 살생하거나 사음하거나 도둑질하거나 한 것들이 다 업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입과 몸만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업을 짓는 것도 많습니다.남을 미워하는 마음,시기하는 마음,죽었으면 하는 마음,이런 마음들이 뭉쳐서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참회를 해야 합니다.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업장은 단지 금생만의 것이 아니라 억겁이라는 세월동안 쌓인 것입니다.그러므로 비록 금생에는 악업을 별로 짓지 않았다고 자부해도 틀린 생각입니다.전생에 무슨 짓을 하다가 금생에 나왔는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참회를 해야하고 참회를 함으로써 업장을 녹여야 합니다.우리 몸이 병드는 것도 업장이 두텁기 때문인데 특히 전생에 살생을 많이 한 사람은 육신의 병을 많이 앓게 된다고 합니다.육체보다는 마음에 병이 든 사람은 과거에 남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죄업을 모두 참회하게 되면 병도 낫게 되고 하고자하는 일도 뜻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천수경에 보면 십악참회라는 것이 있지요?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고,무엇으로 짓느냐에 따라 신.구.의 삼업이 있는데,몸으로 짓는 살생.도둑질.사음,입으로 짓는 망어.양설.악구.기어,마음으로 짓는 탐애.진애.치암을 십악중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업은 여러 겁 동안 지어 온 것이기 때문에 좀처럼 소멸되지 않습니다.건성으로 참회진언을 몇번 외운다거나 부처님 앞에 절을 몇번 한다고 봄볕에 눈녹듯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 하는데 역시 오직 한마음으로 참회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참회의 방법에도 사참(事懺)이 있고 이참(理懺)이 있습니다.사참은 죄를 드러내서 행동으로 불보살님께 용서를 비는 참회법입니다.절을 한다든지 진언을 외운다던지 하는 것으로,몸으로 하는 참회를 말합니다.이참은 죄라는 것의 근원이 우리 마음의 무명에서 나온 것인데 무명이란 것도 본래는 실체가 없고 무엇엔가 미혹해서 일어난 것이므로 죄의 근원도 사실은 자성이 없다는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진실한 참회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참은 몸으로 하기 때문에 쉽지만 이참은 죄의 본성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어렵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오직 일념으로 진실한 참회를 하게되면 사참이 결국은 이참이 되는 것입니다.108배,천 배,만 배를 하거나,참회진언을 일념으로 외우거나 오직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일념이 무심이 되고 무심은 곧 본원자성에 도달하게 되어 <죄란 자성이 없고 마음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진참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종합하면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갖춰야 하는데,첫째는 불보살님의 대자대비에 대한 확신이요,둘째는 오직 한마음이요,셋째는 참회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마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일념으로 참회하는 마음,과거의 죄업을 뉘우치는 한마음만 가지면 이 마음은 바로 불보살님의 대자대비를 확신하는 마음이요,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일념,한마음에는 확신과 참회가 다 포함되므로 진정으로 기도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업장이 두텁기 때문입니다. 업장을 소멸하면 소원을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백겁천겁 쌓인 죄업을 한 생각에 모두 없애기를 마치 마른풀을 태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듯이 한다"고 하는 뜻입니다.바로 오직 한마음으로 지극한 참회를 함으로써 모든 죄업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이러한 참회를 진참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회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다>하고 특정사항에 대해서 신이나 또는 신부에게 선별적으로 고백함으로써 가능할지 모르나 불교의 참회는 그런 마음으로는 불가능합니다.오직 뉘우치는 마음,여기에는 일체의 딴 생각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치 마른 풀을 훨훨타는 불길속에 던졌을때 흔적도 없이 타버리듯 죄업이라는 업장도 송두리채 소멸되어 본래부터 간직된 지혜로운 자기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이 본래 모습을 찾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저절로 이루어집니다.왜냐하면 바로 자기자신이 불보살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왕 기도를 할 바에는 어떤 소원을 가졌던 간에 진정한 참회를 함으로써 우리 자신속에 감쳐진 가장 값진 보물을 찾아내 멋있는 인생을 삽시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 편

법 천 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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