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태종(天台宗) 개종(開宗)과 불교사상(佛敎思想)의 귀일(歸一)

국사 이전의 고려불교는 소위 「오교구산」이라 하는 신라불교의 여러 종파가 대개 그대로 전승되어서 고려불교로서의 독창적인 특색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천태종이란 법화경의 「회삼귀일」, 「일심삼관」등의 사상을 가지고 천태산의 지자대사에 의하여 조직, 완성되었으므로 지자대사가 거주하던 산의 이름을 취해, 교리적인 면에서 말할 때 「천태학」이라 부르고 종교적인 면에서 말할 때는 「천태종」이라한다. 우리나라에서 천태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부터로 신라의 원효대사를 비롯하여 여러 학승들이 천태학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한 것이 많았다. 또한 고려에 와서도 초기에 능긍 등이 천태종의 개창을 주청한 일이 있었고, 제관은 「천태사교의」를 지어 천태의 교학적 연구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국사 이전까지는 천태학이 하나의 교학으로서 연구되었을 뿐 한 종파로서는 성립되지 못하다가 숙종 2년(1097)에 국사에 의해 국청사의 낙성과 더불어 개종을 하게 된 것이다. 국사가 천태종을 개창한 것은 단순히 불교의 한 종파를 성립한 데 의의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통일신라의 불교가 오교구산이라는 종파불교로 분립하면서 생긴 폐단은 각 종파간 갈등과 대립이 심했던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한 부처님의 제자로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이렇게 심한 대립 분쟁은 불승으로서의 화합을 파괴하고 국민으로서의 단결에 지장을 가져오게 되므로 이런 폐단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 국사의 큰 포부이며,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국사가 천태종을 개창한 근본적인 이유는 고려불교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대승의 보살심에서 나온 것이다. 국사는 교와 선의 일치를 주장하여 천태종에서 중히 여기는 지․관을 가지고 선종을 포섭하여 선종 구산의 수재들을 천태종에 들어오게 하는 한편 교종을 대표하는 화엄종에 대하여는 선사이면서 화엄학을 연구 강석했던 규봉선사의 화엄학으로써 고려화엄학을 통일하여 화엄종의 교관쌍수에 의한 실천에 중점을 두게 하였다. 이와 함께 천태종을 개종함은 종래 국내에 있던 종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과 대립 분쟁을 지양할 수 없기에 「회삼귀일」의 사상을 가진 천태종을 도입하여 고려불교의 화합적인 개조를 기도하였다. 특히 천태종의 도입은 국민사상의 귀착점을 확정하고 원효가 주창하였던 「화쟁사상」,「통불교」적인 이념을 존승하여 그의 구현을 위한 한 방도로서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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