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대금(大琴) 부는 승려' 이삼(二三) 스님(삼성동 봉은사)은 불가에선 괴짜로, 국악계에선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10대 후반에 이미 '충무로에서도 쳐주는'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1969년 스물의 나이에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서 출가했다. 행자 시절 스스로 만든 목탁을 장단 맞춰 두드리며 유행가를 부르다 혼이 난 적이 있고, 80년대엔 스님마다 다른 염불 가락을 통일시키기 위해 표준 악보를 만들 궁리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은 대금에서다. 독학으로 대금을 시작한 스님은 79년부터 17년 동안 대금 정악(正樂) 기능보유자로 유명한 녹성 김성진 선생을 사사했다. 80년대 중반까지 생존해 있었던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도 두루 배웠다.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던 중 89년 6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 가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것이다. 석달 간의 입원과 여러 해에 걸친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른팔은 다시는 쓸 수 없게 됐다.

대금 연주는 한손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대금과 그의 인연도 끝이 난 듯했다. 그러나 사고가 난 뒤 1년쯤 지났을 때 그는 다시 대금을 잡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이 심했을 때였어요. 어설프게나마 한손으로라도 대금을 불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몸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왼손밖에 쓸 수 없었던 그는 대금의 여섯 개 구멍 중 고음을 내는 세 개의 구멍 만을 이용해 연주했다. 낮은 도 소리는 높은 도 소리로 바꿔내야 했다. 당연히 음역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낸 뒤 스님은 한손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대금을 스스로 고안해냈다. 오른 손가락으로 짚어야 하는 세 곳의 구멍에 키를 달아 이를 왼손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님은 '지구 상에 오직 하나 뿐인' 이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님은 팔을 다치기 이전부터 절 한켠에 공방을 차려놓고 가야금.거문고.장구 등의 악기를 직접 만들어온 장인(匠人)이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대구에서 독주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선운사 산사 음악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 '외팔 연주'를 선보였던 스님은 19일 자신의 대금 연주곡을 담은 첫 음반을 냈다. 음반사 '신나라'에서 나온 '여음적 대금정악'이란 이름의 이 음반은 '평조회상1' 등 독주곡 10곡과 정대석 KBS 국악관현악단장의 거문고와 병주한 '유초신지곡'을 CD 두 장에 담았다. 연주 시간은 두 시간 정도.

음반 출반에 이어 다음 달에는 자신이 채록한 대금정악 전곡의 악보집인 '정악대금보'를 출간할 예정이다.

출처 아관실체(我觀實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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