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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법사(이재묵)는 올해로 무속계에 입문한지 10여 년째, 처음에는 호남지방에서 이름을 날리다 서울로 상경, 정·재계 실력자들의 점을 봐주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법사를 거쳐간 국회의원만 해도 20 여 명이 넘고 장관 3명, 대기업총수 6명, 현역 군장성과 검찰, 경찰 등 고위공무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법사의 주특기는 액운을 물리치는 것. 이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이 법사는 씻김굿을 선호한다. 씻김굿은 진도를 중심으로 한 전라지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민간신앙 중에 하나이다.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주고 영혼의 부정을 씻어주어 극락왕생케하고 자손의 복을 비는 굿이다. 무가를 부르고 빗자루로 짚이나 헝겊으로 만든 죽은이의 영혼이 담겨있다는 신체모형을 씻기는 굿이다. 남도지방에서는 이를 '살풀이 굿'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굿을 하길 권하는 것은 아니다. 치성을 드리거나 액운을 떼는 다른 방법으로 손님의 우환이 치유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이 법사는 점집에 가면 흔하게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부적도 웬만해서는 써주지 않는다. 그는 일년에 음과 양이 합일하는 날에 겨우 10여장의 부적을 만들어 보관하며 그 10 여장의 부적의 진짜 주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부적을 조르거나 굿을 억지로 청하는 손님은 대번 이법사의 불호령을 맞게 된다.

"굿이란 것은 해야 될 경우가 있고 하지 않아도 될 경우가 있는데, 무턱대고 굿을 하자고 하면 되느냐"며 쫓아내기 일쑤이다.

조실부모 - 외로운 어린 시절
문수 법사 이재묵 씨는 195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온 동네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남이었고 대금과 하모니카 연주를 잘하는 예술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아버지는 결혼 직후부터 악성 폐렴에 걸려 알아 누었고 이 법사의 어머니는 이 법사가 태어나자마자 어린 핏덩이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 이 법사의 할머니는 아들을 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결국 법사의 아버지는 겨우 3살인 어린 아들을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 집안의 재산은 이미 병구완으로 다 스러진 후였다. 그 후 이 법사는 동네 어른들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누구 할 것 없이 어렵던 시절, 기댈 곳 없었던 이 법사는 하루 하루가 배고픔과의 싸움이었고 일자리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의 작은아버지를 찾아 상경한 것은 그의 나이 겨우 7살 때였다. 반드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 법사는 작은 주먹을 야무지게 쥐었다.

홀홀 단신으로 서울상경 - 넝마주의와 주먹세계
그러나 난생 처음 밟은 서울 땅은 그리 호락호락 이 법사를 맞아주지 않았다. 주소하나 달랑 들고 물어 물어 찾아간 작은 아버지의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는 당장 작은 몸을 쉴 곳조차 없었다. 길거리를 배회하며 헤매던 이 법사는 넝마주의에게 끌려가 넝마주의가 되고 만다. 2년여를 갖은 학대와 괴롭힘 속에서 살아남은 이 법사는 어느덧 넝마주의 세계에 익숙해져 아귀 같은 싸움을 거쳐 자신만의 쓰레기통을 확보하게까지 된다. 그 와중에 그는 주먹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성공해 보겠다던 이 법사의 꿈은 친척 아저씨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으로 송아지를 사서 돈을 크게 불려보라던 5촌 아저씨는 그 돈을 자신의 빛을 갚는데 다 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믿고 있던 친척 아저씨의 배신에 이 법사는 절망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하루 하루를 술로 살았다. 아무나 보이는 대로 시비를 걸어 주먹질을 했다. 이런 그를 눈여겨본 한 주먹 계의 보스가 그에게 접근을 해 왔다. 주먹세계에만은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던 이 법사는 자포자기하는 마음과 더 이상 당하며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주먹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온몸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보스의 배신이었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조직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첫 번째 자살기도 - 아버지의 만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을 참기 어려웠다. 그의 방황은 다시 시작됐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하루를 연명해갔다. 그러던 중 그를 잘 본 공사장 작업반장이 화물차 조수 일을 소개해 주었다. 당시는 운전면허를 따기도 쉽지 않았던 때로 화물차 조수를 하면서 운전기술을 배우면 운전기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화물차 조수일은 만만치 않았다. 일은 고되고 운전기술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밤을 꼬박 세우면서 작업을 하고 짐을 실어 내리면서도 그는 운전기술을 배울 생각에 고된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한 번 운전석에 앉아본 이 법사는 갑자기 차가 뒤로 굴러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차도 사람도 담벼락마저도 무사했지만 운전기사는 이 법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 길로 조수직에서 쫓겨난 이 법사는 꿈이 무너지고 삶을 살아갈 희망을 잃고 말았다. 그는 수면제를 사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수면제를 몽땅 털어 넣고 그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꿈속에 아버지가 나오셔서 그를 만류했다. 아직은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며 따라가려는 이 법사를 한사코 떼어놓고 먼저 가 버리셨다. 그리고 이 법사는 잠에서 깨어났다. 사흘동안의 잠이었다. 죽음처럼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이 법사는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었다.


두 번째 자살기도 - 신의 예지력
아버지의 말씀처럼 다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 법사는 주먹세계에 있으면서 알아낸 작은 아버지의 거처를 찾아갔다. 그동안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워 찾아뵙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는 작은아버지 밑에서 폐자제 가게를 도우며 열심히 일한다. 자신이 넝마주의를 할 때 맺은 인맥을 활용하여 페자제 가게는 번성하게 되었고 이 법사는 결심한 300만원을 모았다. 그는 작은아버지 곁을 떠나서 장사를 시작했다. 고구마, 생선, 풀빵, 야채장사 등 그가 안 해본 장사가 드물정도였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 않고 했다. 원양어선에 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교회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에게 교회에서 친해진 한 은행원이 자신과 함께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법사는 그의 말만 믿고 자신이 모은 전 재산 2천 700 여만원과 전세자금까지도 빼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되는 듯 했다. 세금계산서를 들고 세무서에 가서 돈을 받아오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로 경찰들이 들이닥치면서 이 법사의 꿈은 또다시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함께 사업을 하던 은행원이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법사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는 쥐약과 술 한병을 들고 산으로 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검을 보고 놀랄까봐 그는 땅을 깊게 파고 그 안에 누웠다. 쥐약과 술을 먹었다. 아득하게 정신이 멀어지면서 그는 며칠이나 그 곳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고 그의 왼쪽에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한 노인이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노인의 모습은 마치 신선을 연상하게 했다. 이 법사가 몸을 일으키자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구덩이에서 나온 이 법사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근처 공동묘지에 영혼들이 모여 있는 것이 그의 눈에 확연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거리로 나오자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 괴롭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또 어떤 사람을 보면 그의 과거가 보이고 고민거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 그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나 악업이 보이면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치고 고민이나 괴로움이 보이면 벗어날 방도를 알려주려 들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8살 때였다.

신의 예지력을 얻다 - 육체의 괴로움
두 번째 자살이후 이 법사의 눈에 귀신은 물론이고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눈에 뻔히 보이는 화를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친구와 길을 걷다가 마주 오던 여자에게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에이 빌어먹을! 네 서방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온갖 고생을 다하고 있는데 남의 남자와 눈이 맞아 그 짓을 하고 돌아다녀? 너나 그 놈이나 조금 있으면 그 벌을 받아 큰 화를 당할 테니 두고봐라!" 친구는 깜짝 놀라 여자에게 대신 사과하며 빌었다. "이 사람이 오래 앓고 나더니 정신이 이상한가 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친구가 문상을 가게 되었다. 병원 영안실에 들어선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옆 상가에 놓인 위패의 사진이 분명 얼마전 이 법사가 욕을 해 댄 바로 그 여자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자는 외간남자와 대낮에 여관에 있다가 여관에 불이 나서 타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법사에게 신이 내렸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 법사는 이 때 부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사람과 신 사이에 오직 혼자 서게 된 것이다. 인간의 예의와 질서, 굴레를 초월하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간혹 몸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온몸이 마비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예지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법사의 예지력은 극도로 발달해 육체가 정신을 못 견디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 하루도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잠을 자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온 몸에 마비증세가 몰려와 방안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날이 많았다. 어떤 때는 반신불수가 된 것처럼 한쪽 몸이 뒤틀리고 움직여지지 않아 하루종일 그저 천장만 보며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어린 아이처럼 옷에다 용변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통증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만 갔다.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고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원인불명"이라는 진단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마비증세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듯이 마비증세가 온 몸을 휩쓸고 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 졌다. 외출도 할 수 없었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마비증세 때문이었다.

탑돌이 - 처음한 공수
결국 이 법사는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지리산에 있는 한 사찰로 찾아갔다. 속세를 떠나 불가에 의지하면 살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부처님의 도량으로 몸 상태는 나날이 호전되었다. 마비증세가 줄어들고 통증도 완화되었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이 법사가 스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서라. 너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며 그를 막았다. 그러나 이법사는 열심히 수행을 하다 보면 도량 높은 스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절 안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절 생활에 익숙해갔다. 그렇게 그가 절 생활에 몸을 굳혀가던 어느 사월 초파일이었다. 절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봉축법회를 열었다. 절은 신도들로 북적였고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탑돌이에 열중해 있던 신도 중 한 명이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진 것이었다. 이 법사는 곧장 쓰러진 신도에게 다가가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했다. 그러자 흐르는 물에 말을 실은 듯 공수가 튀어나왔다. 무아지경 속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법사는 그렇게 공수를 계속했다. 법사의 공수가 끝나자 신도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벌떡 일어났다. 이 일이 있은 후 주지스님은 이 법사를 불러 말했다. "이제 깨달았느냐? 너의 길이 따로 있다. 그 길을 통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면 된다. 너의 능력을 헛되이 쓰지 말고 오직 남을 위한 옳은 일에 쓰기 바란다." 그 대부터 이 법사는 절을 떠나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녔다. 좋은 산을 발견하면 즉시 계곡에서 목욕재개를 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일주일을 기도로 버틴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 중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하자. 나의 예지력을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풀어진다면 그것도 역시 뜻 깊은 일이 아닌가!' 이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이제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온 기도를 멈추고 짐을 꾸려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이 법사는 서울 길동에 법당을 차리고 중생들의 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 죽은자의 혼을 위로하는 지장제일보살을 모시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주요활동 - 천기누설
이 재묵 법사의 대표적인 예언으로는 김일성 사망, 등소평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건, 차기 대통령 등이 있다. 특히 지난 97년에는 또다시 발생한 마포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와 한보 부도에 대해 정확히 예언한 사람으로 알려져 각종 신문 방송 잡지로부터 '최고의 예언자'라는 칭송을 받으며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적도 있다. 이 일은 한 주간지 기자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올해의 국운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기사화하지 말것을 당부하며 "내년 봄 마포에서 화염이 솟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명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안심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서해 쪽에 심상찮은 기운이 뭉쳐있는데 앞으로 이것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는 큰 소동이 있을 것입니다. " 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3월 마포 아현동의96년 폭발 지점과 인접한 공사장에서 20층 높이로 불기둥이 솟았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또한 서해안 당진에 자리잡은 한보철강이라는 기업이 5조억이라는 사상 최대액수의 부도를 내어 정부와 국회는 물론 대통령 집안까지 파문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 대지진이 서해안에서 발생한 것이다.이를 계기로 이법사는 한보철강의 부도를 처음으로 알아맞힌 사람이 되었고 최고의 예언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국운예언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미국무역센터 참사를 예견하여 많은 신도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의 예언 스케일은 굵직굵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때문에 고위층이 즐겨 찾는 무속인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일 예로 그는 지난 선거 때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했다가 몇몇 언론의 취재공세에 시달려 본의 아니게 도피생활을 갖기도 했다. 자신이 사람들 앞에 너무 노출될 경우 손님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운예언가'의 칭호를 받고 예언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는 이 법사지만 법사는 '신'으로 부터 부여받은 예지력을 통해 보이는 것들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누이강조한다. 그것이 '천기누설'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자체가 한날 한시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신'과 '중생'을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마치 자기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 마냥 '신'의 말씀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발설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 저도 한 때 '신'으로 부터 부여받은 예지력을 통해 보이는 것을 함부로 발설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 뿐 아니라 국운까지도 물어보는 신도들을 그냥 모르는 채 지나칠 수 없어 한마디씩 던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정치 초년생부터 국정을 움직이는 직책에 있는 고위층까지 저에게 국운을 듣고자 끊임없이 약사여래원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이법사는 산 기도를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그 이유를 이법사는 이렇게 밝힌다.

"제가 발설한 천기누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국운은 따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제 말 몇 마디가 국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운명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듯이 국운이란 국민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국민이 잘살고 행복해지면 자연히 국운이 뒤따르는 것인데.... 철모르고 천기를 누설한 것이 무척 후회스럽습니다. 당초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을 차리면서 나의 예지력을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서 쓰겠다고 결심했던 것과는 다르게 '국운예언가'라는 호칭을 받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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