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만드는 스님이라고 해서 연꽃스님이라고 불린다. 은평구 진관외동에 위치한 연화정사 주지로 있는 정명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연꽃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눈만 뜨면 연꽃을 만든다.

국내 유일한 연꽃 작가다. 무색천을 구입해서 원하는 색깔로 하나 하나 물을 들여 만든다. 만든 연꽃은 법당에 사용하거나 신도들이 사서 축원한다. 불자들이 가정에서 등처럼 매달아 놓기도 하고 장식용으로도 이용한다.

연꽃을 만드는 것이 하루 일과. 요즘은 사월 초파일 연꽃등 준비로 더욱 바빠졌다. 연꽃을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간다. 작게는 주먹만한 차량 장식용부터 지름이 2미터나 되는 크기까지 연꽃의 규모도 다양하다

원래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다. 연꽃을 만들기 전에는 꽃꽃이를 했다. 동양 꽃꽃이에 이어 서양 꽃꽃이를 했다. 그러다가 조화를 만들었다. 기왕이면 불교꽃인 연꽃을 만들고 싶었다.

"다른 조화는 모두 교재와 교본이 있는데 연꽃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연꽃을 찾아다니며 꼼꼼하게 관찰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친끝에 노하우를 익혔습니다"

88년 리베라 호텔에서 불교 꽃꽃이 전시회를 가졌다. 성철스님 열반후 49제단을 그가 맡았는데 그때 연꽃을 많이 만들었다.

일반 꽃꽃이 전시회를 할 때마다 조화로 연꽃을 만들어서 전시를 해봤다. 꽃꽃이에 너무 많이 정열을 쏟다보니 몸이 망가졌다. 오장육부가 다 쑤시고 아파 3년밖에 못살것 같았다.

"아파서 죽을 몸이라면 사는 동안 기도나 실컷 하자는 마음에서 연꽃을 만들어 기도를 했어요. 이왕이면 좋은 일이나 하다 죽고 싶어서 아는 사람에게 연꽃을 만들어 줬습니다"

죽는 날까지 연꽃을 만들기로 했다. 연필로 본을 그려놓고 연꽃을 만들었다. 매일 연꽃 한송이를 아트플라워로 만들어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올렸다. 백일되는 날 다시 연꽃을 떼어내 전기스탠드로 만들어 200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올린 백일기도가 끝나자 죽을 것 같이 아팠던 몸이 씻은듯이 나았다. 98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100일기도를 마쳤다.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연꽃등을 만들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 연꽃등 하나 만드는데 무려 300번 이상이나 손이 간다.

첫해는 500개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더 잘 만들려고 한것이 다 망가지고 말았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습기와 구김에 강하고 염색도 안날라가서 반영구적으로 쓸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번에 돌아오는 초파일에는 제대로 된 연꽃등이 처음으로 나가게 된다.

"국내에서 파는 수련은 모두 수입품이지요. 우리나라 법당에도 수련대신 제가 직접 만들어서 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연꽃에 매달려 있습니다"

수련은 연밥이 없다. 연꽃은 열매와 연꽃이 봉우리때부터 만들어져서 나온다. 다른 꽃은 꽃이 피고 떨어지고 나서 열매가 나온다. 그것이 연꽃과 수련의 차이라고 정명스님은 설명한다.

왜 스님이 되었을까? 초등학교 졸업하고 얼마안돼 절에 갔다. 16살때 절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본 은사스님이 중되라고 권하는 바람에 놀러간지 열흘만에 머리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말그대로 놀러갔다가 얼떨결에 스님이 된것이다. 그러나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남동생도 스님이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직접 절에 데려다 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자식 다 키우고 나서 말년에 머리깎고 그토록 바라던 비구니가 되었다.

집안에 중이 둘이나 있으니 웬만하면 그냥 살다 가시라고 자식들이 말렸으나 어머니는 끝내 스님이 되었다. 10년 보살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머리깎고 비구니로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을 남기고…

정명스님. 초등학교만 마치고 머리를 깎았지만 공부는 계속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앙승가대학을 올해 졸업한다.

꽃을 하면서 공양도 드리고 불교 발전에 기여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불교 꽃꽃이 전시회를 해마다 해왔다.

작년에 처음으로 연꽃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한 연꽃을 보고는 색깔과 모양이 너무 예쁘다면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이 많다.

"책자로 작품을 보는 것보다 실제로 와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예쁘다고 전시회에 들른 스님들이 말해요"

그러나 꽃만드는 데 너무 공력이 든다. 한마디로 중노동이라고 말한다. 20년 넘게 꽃을 만들어오다 보니 건강이 악화됐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연화플라워회 회장. 꽃공양을 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이 크다. 불교방송 등 여기 저기 꽃꽃이 강사로도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불교 행사에 맞는 꽃꽃이를 체계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꽃꽃이 하는 불자와 스님들이 하나로 뭉쳐서 계속 연구발전시키고 키워나가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불교 문화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불교 법당 장엄하는 문제도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연꽃스님은 지금 무릎이 닳도록 연꽃등을 만들고 있다.

(지난 보도자료 참조) <- 클릭

불단을 장엄하던 전통 지화(紙花)를 기억하시는지? 종이에 물을 들여 요리 조리 접고 잘라서 만들던 화려한 종이꽃들. 생명력이 유한한 생화(生花) 보다 훨씬 더 긴 시간동안 부처님 도량을 장엄하던 종이꽃은 그러나 어느 틈에 슬쩍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려 지금은 사찰 박물관에서나, 혹은 태고종 봉원사에서 열리는 큰 행사 때에만 만날 수 있다.

불교꽃꽂이 연구가 정명 스님(연화플라워회 회장)이 사시사철 생생한 연꽃 만들기에 눈을 돌린 것은 이렇게 문득 사라져간 지화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되살리고자 함이라고 한다.

스님은 12월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안국동 백상기념관에서 ‘연꽃전’을 연다. 스님으로서는 드물게 꽃꽂이 개인전을 여는 것으로 60여 작품, 수백 송이의 연꽃이 전시장을 가득 메울 예정이다.

단 스님의 이 연꽃들은 마음으로 향기를 맡아야 하는 꽃, 진흙에서 피지 않고 스님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은 조화(造花)이다.

옆으로 길게, 혹은 한무리의 군락을 이루어서, 또 때에 따라서는 나비춤을 추는 스님의 손에 들려서 화려한 빛을 발하는 연꽃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생명을 지니고 불자들 곁으로 찾아들게 된 것이다.

스님은 “전통 지화의 전승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오늘을 대표하는 장엄용 꽃의 개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여 오래되어도 변하고 바래지 않는 연꽃을 5년여의 연구 끝에 마침내 완성해냈습니다”고 밝혔다.

불단을 장엄하는 인공 조화가 불교용품점에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불단의 다양한 크기에 어울리면서 무엇보다도 법당의 위의를 살려주는 작품이 적은 것이 불교꽃꽂이에 관한한 누구보다 눈이 밝은 스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꽃과 함께 살아오면서 꽃을 다듬고 매만지는 일이 곧 저의 수행이었습니다. 무심한 꽃을 통해서 연기법을 깨달았고 청정무구한 꽃을 닮으려는 노력은 곧 석가 세존에게 다가가는 길이며 꽃을 아끼려는 마음은 곧 자비의 실천행이라는 것을 터득했지요.” 스님은 이 전시회가 새로운 불단 장엄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일으키고 불교꽃꽂이의 지난 성과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02)724-2236,2243
SNS 기사보내기
이점섭 편집위원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