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


화두(話頭)가 성성(惺惺)하면
망상(妄想)은 저절로 적적(寂寂)하리니

오늘은 여름안거가 시작되는 결제일입니다. 출가 사문들이 세간을 벗어나 출세간의 도를 구하는 이 일은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어떤 선객이 백장 회해(百丈 懷海: 749∼814)선사를 찾아가서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如何是奇特事]?” 하고 물으니, 선사는 “홀로 우뚝 앉아있는 대웅봉이다.[獨坐大雄峰]” 하였다. 그러자 선객이 절을 하니, 선사가 때렸다.

회해선사가 머물던 산 이름이 백장산(百丈山)이며 그 주봉(主峰)이 대웅봉(大雄峰)이다. 투자 의청(投子 義淸: 1032~1088)선사가 이 독좌대웅봉(獨坐大雄峰) 이야기에 대해 절창(絶唱)을 남겼다.

巍巍峭逈出雲宵 (외외초형출운소)
頂鎖氷寒勢外遙 (정쇄빙한세외요)
坐觀四望煙籠處 (좌관사망연롱처)
一帶靑山萬水朝 (일대청산만수조)

저 멀리 구름 밖에 우뚝 높이 솟아있는
찬 눈 덮인 정수리는 하늘까지 뻗었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안개 연기 서린 곳에
푸른 산은 만 개울의 근원을 품고 있네.

기특한 독좌대웅봉(獨坐大雄峰)이란 백장산의 대웅봉 산꼭대기에 혼자 앉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대웅(大雄)처럼 홀로 우뚝 앉아 있는 대웅봉이라야 기특한 것입니다.

세간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름안거를 하는 우리 조계총림 대중들은 이 조계산 속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 지내는 것이 기특한 것이 아닙니다. 백장산의 주봉인 대웅봉처럼 이 조계산에 임금제(帝) 자처럼 기상 높게 홀로 우뚝 솟아있는 조계봉(曹溪峰)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홀로 앉은 비대면(非對面)의 기특한 안거가 될 것입니다.

獨坐曹溪峰 홀로 우뚝 앉아있는 조계봉이여!
白雲閒去來 흰 구름이 한가롭게 오고가는데
山鳥朝夕鳴 산새들은 아침저녁 지저귀면서
百花四季開 계절 따라 온갖 꽃이 피어나구나.

엄양(嚴陽)존자가 조주(趙州: 778~897)선사를 찾아가서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 합니까?[一物不將來時如何]” 하니, 조주선사가 “내려놓아라[放下著]”고 하므로, 엄양이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습니까?[一物不將來 放下箇甚麼]” 하니, 조주가 “그러면 붙들고 있으라.[恁麼則着得去]” 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 방하착(放下著)이요, 놓지 않고 꽉 붙들고 있는 것이 착득거(着得去)입니다.
이번 안거 대중들은 어떻게 방하착(放下著)하며 어떻게 착득거(着得去)할 것인가?

마음속에 얽혀있는 시비(是非) 선악(善惡), 고락(苦樂) 유무(有無) 좌우(左右)인 양변(兩邊)의 분별망상을 놓아버리는 것이 방하착이요, 본참공안(本參公案)의 화두를 오나가나 마음속에 빈틈없이 붙들고 간절하게 의심(疑心)하여 의단(疑團)이 독로(獨露) 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는 것이 바로 착득거입니다.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착득거하면 본래 실체가 없는 허망한 망상(妄想)은 저절로 적적(寂寂)하여 자연히 방하착하게 될 것입니다. 염불 기도하는 분들은 부처님의 명호를 일념으로 붙들고 염송하면서 ‘着得心頭切莫忘’ 생각이 다하여 무념의 비대면으로 들어가야 참 부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절하는 능례(能禮)와 절하는 대상인 소례(所禮)가 둘이 아닌 비대면의 진성(眞性)에서 연기되는 것임을 알아, 지극한 마음으로 진성을 공경하면 무명은 자연 굴복될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예경(禮敬)입니다.

좋고 나쁜 경계의 근본이 본래 청정하고 공적(空寂)한 줄을 바로 보는 정견(正見)이 방하착이요, 성성(惺惺)한 영지(靈知)로 연기(緣起)를 바르게 사유[正思惟]하는 것이 착득거이니, 우리 대중들은 이번 여름안거를 이처럼 성성적적하게 선정과 지혜를 가지런히 닦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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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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