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편>초심의 기도


초심!

그것은 시작하는 자의 마음이다.

지극한 기도는 시작한 그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데 비결이 감추어져 있지만, 중생의 기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초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돌이켜 보자. 우리가 처음 신심을 일으켜서 관세음보살을 한번 염할 때의 그 마음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초심은 이원화를 모른다.

관음을 찾는 자가 관음과 별개의 존재일수 있는가?

기도의 참뜻은 불이에 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나누어지고 쪼개어진다.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이원화한 것인가?

마음이 이원화 될 때 마음은 닫혀 진다.


초심의 기도는 결코 닫혀진 마음의 기도가 아니다. 공한 마음의 기도요, 준비된 마음의 기도이다.

이 공한 마음의 기도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는 항상 준비되어 있으며, 모든 것에 대하여 알려져 있다.

초심자. 열린 자. 비워진 자의 기도는 원만. 성취. 진실로 향하지만. 물든 마음. 닫힌 마음. 채워진 마음의 기도는 그 가능성이 적다는 것.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초심의 기도는 분별심의 기도가 아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가리워진 물든 기도가 아니라. 그 기도 있는 그대로가 불살생. 불사음. 불투도. 불망어인 근본 마음의 기도이다.우리가 만일 너무 많은 분별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한정지을 뿐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욕심을 지나치게 부린다면.

기도하는 그 마음이 결코 부유하지도 만족스러운 상태일 수도 없으며. 그것이 우리들의 근본 지혜를 잃게 하고 괴롭게 한다.

이 얼마나 슬픈 기도인가?

초심의 기도자는 과 .부족을 한결같이 넘어서야 한다.


근본 지혜. 근본 계율. 근본 마음이 원만히 갖추어진 중도 위에 서서 조용히 관세음을 염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초심의 기도자는 중도조차 탐하지 않는다.

관세음까지도 탐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를 한정짓는 이기적인 생각을 탐할 것인가?

이기심 없고 증득하고자 하는 생각까지 없을 때 우리는 참된 초심의 기도자이다.

관음 기도인이여~ 시작할 때에 그 마음을 잃지 말라. 우리의 기도는 항상 시작이다.


초심.

그 속에 기도의 핵심이 있고 관음보살이 모습을 감출 수 없는 연유가 있는 것이다.

항상 시작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시작하는 기도인이 되어.... 끝으로 옛 설화 한 편을 인용하여 가정에 부보살의 불상이나 탱화를 봉안하면 가정에 불화가 있고 불길하다는 속설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중국 제나라에는 손경덕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정에 관음상을 모시고 항상 공경히 섬겨온 관음신자였다.

어느 때 손경덕은 억울하게 강도혐의를 입어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누명을 벗기 위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였다.


어느 날 밤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와서 <구고관음경>을 가르쳐 주면서,

「이경을 천번만 일심으로 외우면 죽음을 면하리라」하였다.

손경덕은 이 경을 지성으로 외어 형장에 이르기 직전에 겨우 천번을 채워 마쳤다.

형장에 이르니 형졸이 칼을 번쩍 들어 경덕의 목을 내리쳤다. 뜻밖에도 칼은 세 조각이 나면서 부러졌고 경덕의 몸은 흠 하나 없었다. 이 사실이 임금에게 보고되자 경덕은 사면되었다.

경덕이 집에 돌아와서 관음상 앞에 예배하고 관음상을 살펴보니 관음상의 목에 칼 맞은 자국이 세 군데나 있었다.


세음보살이 대자비로서 경덕의 고통을 대신 받은 것이다.

이 한편의 설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경덕의 집에 모셔진 관음상은 경덕의 운불이었다.

이 원불은 믿는 자의 지극한 마음에 감응하여 그 죽음까지도 대신 받았던 것이다.

집안에 불상을 모심이 왜 불해의 원인이 된다는 말인가?


히려 잦은 기도와 불상을 모심 으로 해서 경건해지는 집안 분위기, 불상의 예배를 통한 마음의 정화는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집안에서 사찰처럼 멋진 예불문과 공양을 올리지 못한다 하여 배고픈 불보살이 노여움으로 벌이라도 내린다는 말인가?


적어도 불보살은 잿밥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하루 단 한 번의 지극한 합장배례를 칭찬하고 보살펴 줄 자비의 대성들이다.


필자는 오히려 권하고 싶다. 우리의 집안에다 관음상을 모시자고, 우리의 집안에다 원불을 봉안하자고, 그 관음상은 우리 손으로 깎아 만든 목불이라도 좋으리라. 어느 불구점에서 구해온 석고불이라도 좋으리라.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라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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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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