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편. 《 선원 뒷산 까마귀 울음소리 》

 


참선 중 선원(禪院) 뒷산에서 까악까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참선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돌로 빗어진 석불전 뒤편에 있는 삼십여 년이 넘게 된 참나무 위에 까마귀 때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까악까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까마귀가 스님에게 무슨 사연을 전하고져 우는 것일까.

까마귀가 울면 길조라던데 오늘 우리 선원에 좋은 일이 있을까. 귀한 손님이 오시려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스님’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수십 년 전 알고 지내던 임종수 회장님과 지인 두 분이 선원을 방문한 것이다.

 

임 회장님은 현재 대한언론인연맹 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원로 언론인이시다.

 

소승이 출가하기 전 일간신문사 사회부 기자였고 회장님은 당시 국장으로 함께 근무한 바 있는 선·후배 사이다.

 

국화차를 마시며 지난 기자시절에 있었던 미담을 나누던 중 스님과 함께 창설한 대한언론인연맹이 벌써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에 연맹에서 스님을 상임부회장으로 선임되었으니, 언론인의 사명과 한국 언론계 발전에 힘써주십시오.

 

또한 나는 기독교 장로라서 절에 대하여는 알음이 있으나 선원(禪院) 절(사찰)과 선원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소승이 머물고 있는 선원은 SBC서울불교방송·불교일보에서 포교의 목적으로 설립하여 불교 사이버대학을 운영 사부대중 모두가 시간과 학비에 제안을 받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참여하여 불교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며 매주 일요일 법회를 통하여 참선 한 후 산행수행 및 참선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근본적 선원은 통일신라 말에 선종(禪宗)이 전례 된 이후 설치되어 승려양성에 중요한 수행기관으로 큰 구심을 하여왔다.

 

사찰 내에는 선당·선방·좌선당이라고 한다.

 

불자들이나 일반인들은 선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선원의 유래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여 전한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 당시의 비구(比丘)들이 우기(雨期) 이외에는 한 곳에 살지 않고 탁발을 계속하다가 우기가 되면 작은 벌레나 초목들을 밟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외출을 금하고 한 곳에 머물며 안거(安居)한 것에서 유래된다.

 

조선 통신사, 경허집, 한국사원 교육제도를 참고문헌 하여 아래와 같이 집필한다.

 

당시에는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에는 좌선(坐禪)을 하거나 교리(敎理)를 연구하게 되어 있었다.

 

그 뒤의 부파불교(소승불교) 및 중국불교에서는 불교교단이 일정한 사원과 토지 등을 소유하고 그 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탁발을 꼭 하지 않아도 되었고 연중 사원에 상주하며 선(禪)과 경론(經論) 등을 자유롭게 연구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10월 16일부터 이듬해 15일까지 한차례 더 동안거(冬安居)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안거의 전통을 선종에서 이어받아 선원은 중요한 수행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말에 선원이 생겨남과 동시에 전국에 수많은 선원이 세워졌고 여름과 겨울의 안거, 하안거, 동안거를 인정하여 실시하되 하안거를 정법이라 하여 승려의 나이를 뜻하는 법랍은 이로써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선원의 교육 목표는 불교의 진리를 좌선을 통해서 내관하고 스스로 살펴 자기 심성을 철견 함으로써 자증 삼매의 묘한 경지를 체탈하여 견성성불하며 중생제도를 하는데 있다.

 

따라서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는 강원과는 달리 선원은 평생 교육기관으로서의 의의가 더 컷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대표적 선원은 해인사, 범어사, 통도사, 극락암, 봉암사, 송광사, 망월사, 상원사, 내원사, 대승사, 백담사, 석남사, 대원사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행승들에 의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이 이어 지고 있다.

 

또한 그 정진의 기강이나 노력 시간 등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수행처가 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선원이기도 하다.

 

불국사 말사인 대승사 선원에서 지내던 아끼던 후배도반 우암 스님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허응 스님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가슴을 움켜쥐고 한 동안 멍해지는 슬픔의 시간이었다.

 

스님은 나로 인하여 스님의 길을 결심 출가했고, 선방수자로 생활이 시작되여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암을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비보를 접한다.

 

새 해 첫 촛불집회가 열린 7일 광화문 인근에서 분신을 시도한 정원스님이 입적했다고 한다.

 

스님은 자신이 남긴 페이스북에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고마운 마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해도 사랑하오.“라는 글을 남겼다.

 

스님은 “민중이 승리하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이 땅에 정의가 바로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스님도 낙동강 선원에서 지내며 불교역사 강좌를 열기도 했던 선승이다.

 

두 분 스님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소승이 묵고있는 법천선원에서 기도하리다.

 


나무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26편.《지혜로운 사람이 복받는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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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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