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편. 《 도둑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세상 》

 


계절이 머무는 하늘에는 6월이 머물러 있다.

 

창문을 여니 세상이 온통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푸르러 싱그러운 마음과 더불어 마음마저 젊어지는 기분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에도 드문드문 조각구름들이 한가로이 떠도는데 전 열을 흐르는 계곡의 작은 냇물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옥을 굴리는 듯 정갈하게 들리는데 그 맑은 시냇물 소리에 섞여 이따금 이름 모를 산 새 소리가 들리곤 한다.

 

그냥 방에 있기에는 밖의 풍경이 나를 진하게 유혹한다. 문을 나서니 한꺼번에 나를 쓸어 덮는 밝은 햇볕, 그 햇볕이 잘 들어서 푸른 풀밭위에 널어 놓은 하얀 빨래처럼 정갈하고 맑다.

 

산명당이 따로 없구나!

여기가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최고의 명당이지 황금의 궁궐에 황금관을 써야만 하는가?

 

유유자적 걷다 보니 마당 한 귀퉁이 평평한 돌 위에 신문이 놓여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누가 이 산중에 까지 신문을 가지고 와서 읽지도 않고 그냥 간 것인가, 신문을 펼쳐드니 정치판의 싸움 이야기에 경제가 어렵다는 그 애기에 그 얘기이다.

 

그런데 신문의 중간에 끼어 있는 광고지의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도둑에게도 배울 게 있다.”

는 문구였다.

 

세상에 도둑에게 도둑질하는 것을 배우라는 말인가 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자세히 읽다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도둑은 자기의 하는 일, 그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를 한다. 준비가 소홀해서 실패하는 날에는 자신의 소득이 없음은 물론이고 감옥에 가야한다. 그래서 아주 철두철미한 준비와 계획을 세운다.

 

세상 사람들이 도둑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세우면 실패하지 않으니 도둑에게 배워야 한다.

 

도둑은 또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한다.

 

우리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어디 그런한가, 그까짓 것 적당히 하지 작은 일이나 이익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점은 도둑에게 배울 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생활 속에서 도둑에 관한 속담도 있음이 생각난다. 늦게 배운 도적질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 늦게 시작했는데도 남들보다 열심히 할 때 하는 말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있다. 아주 작은 잘못을 그냥 넘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큰 잘못도 그냥 죄의식 없이 하게 된다는 말이다.

 

중국 속담에는 물건을 훔치면 도둑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훔치면 쾌락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도둑을 농담조로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대들보 위에 임금을 뜻하는데 실은 대들보 위에 숨은 도둑을 의미하는 말로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진식이라는 높은 벼슬을 하는 관리가 있었다. 학식이 뛰어나고 성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는 그런 사람이다.

 

어느 날 잠을 자다 눈을 떠 보니 도적이 대들보위에 숨어서 호시탐탐 도적질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진식은 일어나 의관을 정제한 후 자식들을 전부 방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누구나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저 대들보위의 군자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들보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죽여 달라고 했다. 진식은 도둑에게 사람이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하며 타이른 후 명주 두필을 주어서 보냈다.

 

그 후 들보 위에 군자라 해서 양상군자라는 말이 생겼다.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 한분이 계셨다. 산 속 다 쓰러져가는 암자에서 참선 수행하시는 스님은 해탈의 경지에 이른 고승이시다.

 

어느 늦가을 날 공양 지을 양식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 전이고 저녁때가 되자 스님은 물이라도 덥혀 마시고자 다 허물어진 아궁이에 낙엽으로 불을 지피고 계셨다.

 

이때 바람이 쏴아! 하고 불더니 토담 아래 낙엽을 수복히 쌓아 놓고 저만큼 달아난다. 스님이 혼자 중얼 거린다.

“다 지필만큼은 바람이 몰아다 주는구나.”

 

스님이 참선하신 후 새벽에 잠시 누워 계시는데 도둑이 들었다. 공양 지을 양식도 없는 산골의 암자에 훔쳐갈 물건이 있을 리 만무하다.

 

스님이 일어나 조용히 말했다.

 

“이 추운 날 이 깊은 산중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서야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겠소. 이거라도 가져가시오.”

 

스님은 싫다는 도적에게 억지로 덮고 있던 이불을 손에 들려서 산을 내려가게 하였다. 갖고 있으면 무겁다. 내려놓으면 가벼우리니 그 스님의 마음은 얼마나 가벼우셨을까?

 

사는 것은 한밭 바람 같은 것,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잘하는 법은 없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결에 불어오는 신선함과 푸른 녹음의 향기들, 추운 겨울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 주던 스님 보다야 나는 이 절에서 생활하니 풍족하고 차고 넘치는 생활이다.

 

신문에 끼워 들어온 전단지 한 장이 내 마음을 한식경이나 한없이 흔들어 놓은 하루였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또 오리라!

 

나무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17편. 《 평범하나 심오한 한마디 진리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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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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