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편. 《 연꽃과 이심전심? 》



평생을 마음으로 만났다가 어느 날 홀연히 바람으로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생무상을 말한다.


이렇게 한줄기 바람 같은 인생 나그네 여정이지만 업연의 우연의 연속이다. 이런 우연히 계속되면 필연이, 계속되면 운명이 된다.


이런 운명으로 만나는 사이가 부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부부는 살면서 생활방식이 음식이 그리고 생김새도 닮아 간다고 한다. 서로 눈빛만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길을 가다가 빈대떡이 먹고 싶은 아내에게 남편이 저 빈대떡 참 맛있겠다며 사먹자고 한다. 이심전심이다.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한 것이다.


이런 이심전심은 원래 석가세존께서 깨우침을 주신데서 유래된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서 다른 날과 달리 한 시간이 넘도록 설법을 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살며시 연꽃을 들어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깊은 법문을 듣고자 했던 제자들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기도 하고 웅성거렸다.  그 중 가섭이라는 제자만이 그 의미를 알고 살짝 미소를 지었지요. 이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연꽃을 주며 말씀 하셨다.


“가섭아, 나는 너에게 단순이 이 꽃만을 주는 게 아니니라, 이 연꽃의 빛과 향기를 나의 모든 깨달음을 함께 주는 것이니라.”

가섭은 부처님의 연꽃 만 보고도 참 뜻을 알았기에 이심전심으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이런 연꽃은 불교에서만 귀하고 존경스런 꽃은 아니다. 우선 연꽃이 피는 바탕부터 생각해 보자. 연꽃이 피는 곳은 진흙탕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


세상으로 비유하면 가장 추하고 범죄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고매하고 고고한 인품의 인물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과 같다. 이래서 연꽃은 군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군자란 성품이 어질고 바르며 학식이 높고 행실이 점잖은 사람을 말한다. 이런 군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듯이 연꽃 역시 멀리서 볼수록 더 아름답고 향기도 멀수록 맑기 때문에 다른 꽃들처럼 함부로 꺽거나 화병에 담지 아니하고 피어 있는 그대로 두고 보는 게 좋다.


이런 연꽃을 우리 불가에서는 극락에 피는 귀한 꽃으로 여긴다. 연꽃은 밤에는 오므라들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활짝 피어나는데 옛 사람들은 이런걸 보고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여겼다.


연꽃에는 연밥이라 불리는 씨앗주머니가 있는데 구멍마다 씨앗을 잔뜩 품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여인들은 자손을 많이 낳기를 바라며 방석이나 이불 옷에 연꽃무늬를 수놓았다.


이심전심이란 이렇게 불가의 연꽃에서 연유된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친한 친구 사이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이심전심으로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심전심도 진실 된 이심전심 석가세존과 제자 가섭 사이와 같은 이심전심이어야 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꽃잎에 맺힌 구슬 같은 이슬도 꿀벌이 마시면 꿀이 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이심전심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도 자비스런 마음 밝고 고운 이심전심이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합하고 서로 통해서 범죄를 모의 하거나 사회악을 자행하는 것은 이심전심이 아니라 작당이다.


항상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밝은 자비심의 이심전심을 가져야 한다.



나무관세음보살.



다음은 제 14편. 《 내 마음에 행복의 풍금을 치자 》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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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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