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편. 《 완벽한 것보다 자기 자신을 찾아라! 》



며칠 전 아침 태양의 계기일식이라고 해서 하늘을 올려 바라보았다. 태양이 마치 조각달처럼 보이나 역시 태양은 눈부시라고 밝게 빛난다.


달이 태양을 공전하면서 겹쳐서 태양이 반달 같아 보이는 현상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달과 태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태양의 지름이 달의 사백 배나 크다고 한다.


헬륨과 수소로 이루어진 태양의 온도는 약 6천도나 되고 별이나 달은 전혀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을 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강렬한 빛을 내는 태양도 지구의 반쪽 밖에는 비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완벽한 것을 갈구한다. 내가 법을 구하고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는 것도 사바세계의 온갖 번뇌를 끊고 완전한 해탈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완전하게 되는가?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완전함에 가까운 사람이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우선이다. 이런 우화가 있다.


먹을 것이 많은 조용한 연못에 개구리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하게 느껴져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던 중 한 개구리가 목청을 높여 주장했다. 우리에게 임금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주가도 올라가고 다른 동물들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개구리들도 이구동성을 맞장구를 쳤다. 임금이 없기 때문에 체면도 서지 않고 매일 도망만 다닌다고 생각해서 임금을 달라고 용왕님에게 간절히 청하였다.


용왕님은 너희들이 무시당하는 것은 임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렸지만 너무 간절하게 청하는 바람에 개구리들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고 연못 한 가운데에 나무토막을 던져 주었다.


개구리들은 나무토막에 올라앉아서 재미있게 놀다가 임금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지만 나무토막은 아무 말 없이 그냥 덤덤히 물위에 떠 있을 뿐이다. 개구리들은 실망했다. 이 바보 같은 임금님을 어디에다 쓸까?


이런 바보 같은 임금님은 있으나 마나지. 그래서 임금님을 바꿔 달라고 했다. 보다 강력하고 힘 있는 임금으로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임금을 내려주마 하는 소리가 나고 퍼덕퍼덕 하더니 황새 임금이 연못에 내려 않았다.


개구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잘 생기고 멋진 임금이 와서 신이 난 것이다.


봐라! 이번 임금님은 얼마나 멋있고 훌륭하게 생겼느냐, 이제 다른 동물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겠지. 개구리들은 크게 만족해하며 황새를 맞이했다. 그러나 황새는 연못에 내려오자마자 개구리들을 톡톡 쪼아 먹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개구리들은 도망을 가면서 이렇게 강하고 무서운 임금님은 싫으니 다른 임금님을 보내 달라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개구리들은 황새에게 모두 잡혀 먹히고 말았다.


개구리들에게 나무토막 이상의 임금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욕심이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의 종말은 파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멈출 줄도 알고 물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일도 실행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를 알 수 없고 그것을 다스리기도 어렵고 힘든 일인데 다른 사람을 알고 그것을 나에게 맞도록 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바다는 마르면 밑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공자는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였으며, 부처님께서도 잃어버린 너의 마음을 먼저 찾으라고 하셨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바른 사람이다. 부패한 나무에다가 조각을 할 수 없듯이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바른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전부 다 위대해질 필요는 없다.


물이 새는 양동이 보다는 차라리 새지 않는 녹슬은 깡통이 더 낫듯이 자기의 분수도 모르면서 탐욕이나 헛된 망상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보다는 소박하나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는 진실 된 사람이 더 절실한 세상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남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다. 그건 참 잘못이다. 왜 잘못인가 그 원인을 찾아보자. 자각해보라.


내가 존재하므로 상대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어떤 문제이던지 답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면 세상만사 고민은 쉽게 풀릴 것이다.


항상 완전해지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고, 부질없이 상대를 능가하려는 헛된 욕심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져야 한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새벽은 새벽에 눈 뜬 사람만이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기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큰 사자를 하이에나가 목을 무는 순간 하이에나는 이빨이 부러진다고 한다. 실패하면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기에 할 수 있는 힘 사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곳에 고속도로 보다 넓은 마음의 문이 열린다. 최선을 다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명심할 일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절실하고 중요하다.



나무관세음보살.



제 13편. 《 연꽃과 이심전심?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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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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