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불교대불종 종정 만주 예하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
야비한 사람을 벗으로 삼지 말라.
마음이 깨끗한 친구와 어울려라.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하라. 
< 법구경 >

지난번 법회에서는 우리의 운명은 어떤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신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 스스로 개척하는 것인가, 하는데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부처님이나 신이 억지로 떠맡긴 것이 아니므로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불평 불만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는 창조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환경이 관련된 문제로 친구관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환경이나 지역적인 환경은 우리가 마음 먹는다고 당장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우관계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친구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재산이다"라고 말했고,속담에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면 그의 친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친구관계를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불가에서는 훌륭한 덕을 갖춘 사람을 선지식이라고 하여 부처님처럼 존경하는데 과연 어떤 친구가 진정 사귈만한 친구인가,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가?
어떤 친구가 나쁜 친구인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좋은 친구를 사귀는데 그치치 않고 여러분 스스로가 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친구관계에 대해서,
"살생하는 이를 가까이 하면 살생을 배우고 도둑질하는 이를 가까이 하면 도둑질을 배운다. 또 사음하는 이를 가까이 하면  사음을 배우고 거짓말하는 이를 가까이 하면 거짓말을 배우며, 술 먹고 게으른 자를 가까이 하면 술 마시고 게으른 짓을 배우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악행이라 하나니 이에 친구를 택할지니라."
    <사리불아비담론>
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여러분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나쁜 친구로 부터 잘못된 행동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소년은 아직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완전한 인격이 갖춰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고 듣는 것에 큰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이나 주위사람들로 부터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요? 이런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친구가 나쁜 친구며,어떤 친구가 착한 친구일까요?
여러분 부모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러분은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친구를 잘못 만난 탓에 탈선도 하고 불량학생이 되기도 한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세상의 모든일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므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좋은 인연을 지음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는 것도 바로 이 인연을 짓는 일 가운데 하나로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인연을 지어 여러분의 일생이 행복쪽으로 가게 되고 반대로 나쁜 친구를 사귀어 나쁜 인연을 짓게 되면 여러분의 앞날을 불행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불자들은 성불(成佛)이라는 원만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구를 단지 친구라고만 하지 않고 도반(道伴)이라고도 합니다.'도를 닦는 반려자'라는 뜻이지요.

스님들이 출가하면 제일 처음 배우게 되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야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하야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니라"

우리말로 풀이하면 "무릇 처음으로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마땅이 나쁜 사람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며,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서 지키고 범하고 열고 막을 줄을 잘 알아야 하느니라"하는 뜻입니다.

여기서 '처음에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단지 스님이 되려고 출가한 사람만이 아니라 불교를 처음으로 믿기 시작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인데,고려시대의 큰 스님이신 보조스님께서 '처음에 불문에 들어온 사람에게'라는 글의 서두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제일 첫 부분에서 강조하신 까닭은 무슨 일이건간에 처음 시작할때는 사람을 사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이제 곧 방학이 끝나면 머지않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한 학년씩 올라갈테고,필연적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새학년 때부터는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그러나 이렇게 굳은 마음을 먹었다고 할지라도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새로 사귀게 되면 자연 그들과 휩쓸려 모처럼의 굳은 결심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특히 새학기를 맞아서 친구 사귀는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그러면 어떤 친구가 진정으로 좋은 친구일까?여러분은 어떤 친구가 가장 이상적이 친구라고 생각합니까?

돈 많은 친구,의리가 있는 친구,아니면 잘 생긴 친구,아니면 무슨 일이든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친구 등 어떤 친구를 가장 이상적인 친구라고 생각합니까?

옛부터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친구와 우정에 관련된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보면 대부분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도원결의'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관우.장비.세사람이 한(漢)나라를 중흥할 목적으로 동생동사(同生同死)하기로(같이 살고 같이 죽자고),유비의 집 도원(桃園;복숭아 밭)에서 함께 맹세하고 결의형제를 맺은데서 비롯된 말인데,세사람이 끝까지 의리를 잘 지켰기 때문에 진실한 우정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또 죽마고우(竹馬故友)란 어렸을 때 죽마를 타고 함께 놀았던 흉허물 없는 친구의 우정을 말하는데,진나라 권력자 환온이라는 사람이 귀양지에서 죽은 옛 친구인 은호를 칭한 말 가운데,"나는 아이 적에 은호와 죽마를 가지고 놀았었는데,내가 죽마를 내동댕이치면 언제나 그가 이를 집어들었다.그러니 그가 내아래로 도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고서성어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종자기(鐘子期)사이에서 생긴 말입니다.백아가 높은 산울림을 표현하고자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아 굉장하구나!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했고,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아 좋다!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에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던 것입니다.이처럼 종자기는 백아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아 주는 오직 한 사람의 절친한 벗이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있지요?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인데,친한 친구의 마음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고,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여러문은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어 줄을 끊고 평생동안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여기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말이 생겨나고,벗이나 친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할 때 유감의 뜻을 표하는 말로 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전실한 벗의 귀감으로는 신라 진평왕 시절의 귀산과 추항을 들고 있습니다.이 두 사람은 서로 진실한 벗이 되기로 약속하고 짧은 일생이지만 평생동안 우정을 지켰는데 이들이 원광법사를 찾아가 친견하고 평생 지켜야할 도리를 물었을 때 법사가 일러준 것이 바로 세속오계입니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 대해서는 이미 초등학교에서 배웠을텐데 어디 누가 말해보세요?

첫째 나라에 충성할 것, 둘째 효도로 어버이를 섬길 것,셋째 믿음으로 벗을 사귈 것,넷째 싸움터에서 물러서지 말 것,다섯째 부득히 살생을 하더라도 가려서 죽일 것,이 다섯가지 계율이 세속오계이지요?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 두 사람이 같이 먼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험한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 여행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같이 가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두 사람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위급할 때 서로 돕는게 친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산길이라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와 같이가는 것이 퍽 마음 든든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때 공교롭게도 큰 곰이 두 나그네 앞에 불쑥 나타났습니다.그 중의 한 사람은 혼자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고,곰을 미처 보지못한 다른 한 사람은 곰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으므로 그 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섭고 달아날 수도 없고 해서 기절해 버린 것입니다.곰은 죽은 사람은 잘 건드리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쓰러진 친구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다가는 죽었는 줄 알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습니다.

나무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본 친구가 내려와서 엎드려 있는 친구를 일으키며 물었습니다.
"참 이상도 하다.곰이 자네에게 뭐라고 이야기 한 것 같았는데 대체 무어라고 하던가?"
누워 있던 친구가 정신을 차려 일어나 앉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곰이 내게 말하는 걸 자네는 못들었는가? 위급할 때 도와주지는 않고 혼자 나무 위로 올라가는 친구하고는 앞으로는 같이 다니지 말라고 그러던걸."

이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겠지요?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심을 필요가 없고 의리없는 벗은 사귈 필요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위급한 경우를 당하여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나무 위로 재빨리 올라 간 사람을 의리있는 친구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곰을 만나서 재빨리 나무위로 올라가 버린 우화 속의 친구를 의리없는 사람이라고 탓할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서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러면 생사를 같이 할만큼 의리로서 똘똘뭉친 친구라야만 진정한 친구인가?
좋은 친구인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한 데 어울려서 생사를 같이 해야만 의리있는 친구이고,진짜 친구며 착한 벗인가?

그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불량서클을 만들어 온갖 못된 짓을 하는 경우라도 의리를 앞세우는 점으로 본다면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는데,과연 그들은 진정한 친구요,착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가?그럴까요?

"의리"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한자로 옳을 의(義),이치 리(理)자를 쓰는데 어디까지나 이지에 합당한 올바른 행위에 한한 것이지 나쁜짓이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의리의 친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벗이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알 수 있고,재체기 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도 좋고,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곳이라도 같이 가겠다는 의협심도 진정한 친구간에는 필요하겠지요.그러나 그런 친함만으로 진정한 친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벗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공자님은 이로운 친구와 해로운 친구에 대해,
"이로운 친구는 바른말을 꺼리지 않고 언행에 거짓이 없으며,지식을 앞세우지 않은 벗이다.해로운 친구는 허식이 많고 속이 비었으며 외모치례만 하고 마음이 컴컴하여 말이 많은 자이니라"하였습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선생자경(善生子經)에 보면 나쁜 친구에는 네가지가 있다고 하셨는데,첫째 상대방의 물건을 빼앗는 친구,둘째 거짓말하는 친구,셋째 체면만을 생각하는 친구,넷째 나쁜 가르침을 주는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좋은 친구가 갖추어야하는 조건으로는 일곱가지를 드셨는데 (1)고난을 만나서 버리지 않고 (2)가난하다고 버리지 않고 (3)자신의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4)서로 도와주고 (5)하기 어려운 일을 하여 주고 (6)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7)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친구니라 하셨습니다.

유태인의 속담에 "설사 친구가 꿀처럼 달더라도 그것을 전부 빨아먹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무슨 뜻일까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지킬것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친한 친구라고 하여 너무 허물없이 함부러 하다보면 오해가 생기고 그로인해 오히려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더러있지요?엊그제까지만 해도 단짝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말도 않고 지내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특히 여학생 가운데 그런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는 너무 살피기만 해서도 안된다고 했습니다.자기의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허물만 찾는다면 친한 친구는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보면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히틀러는 독재자로도 유명하지만 성격이 괴팍하기로도 소문난 사람입니다.그의 유일한 친구는 돌격대 참모장이었던 에른스트림 대위었는데 그도 히틀러의 비위를 거슬려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그가 죽은 후 독일 천지에는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수많은 군중이 있었어도 (아돌프!)하고 정답게 불러주는 다정한 친구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혼자서 살 수는 없습니다.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서로 마음을 털어 넣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행복할것입니다.그러나 진정한 친구란 많지 않은 법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열반경>,"모든 중생은 본래 불성이 있으나 선지식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까닭에 삼독에 물들게 되느니라"하셨습니다.여기서 선지실이란 훌륭한 스승을 의미하지만 좋은 친구를 뜻하기도 합니다.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이 친구를 사귀는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나 간직한 불성을 회복하여 성불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에서는 단순히 친구라고 하지 않고 법우(法友)라고 하지요.여러분은 부처님을 믿고 가르침을 따르는 법우들 입니다.따라서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서 한걸음 앞서가는 청소년들이요,좋은 친구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가려서 사귀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청소년들에게 좋은 친구 법우로서의 역활을 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가 없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친구란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여러분이 다른 청소년들의 좋은 벗이 되어 주면 여러분에게도 벗이 생기고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벗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는 말 보다는 "좋은 친구가 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최소한 우리 청소년 불자들은 나쁜 친구와 휩쓸려 악행을 하리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을 믿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 스스로 다른 청소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선지식이 따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바로 여러분이 선지식이요,여러분이 보살이요,여러분이 부처님입니다.

새학기를 맞이하면 많은 새로운 얼굴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그때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좋은 친구로서 다른 급우들 앞에 나타나 그들에게 착한 벗이 되어주고 아울러 그들을 법회에 인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한다면 여러분은 훌륭한 선지식이 될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 모두 좋은 친구,착한 벗,진리를 함께 탐구하는 진실한 법우로 거듭 태어나기를 불 보살님 전에 기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불교설법연구원  편 >
  < 만   주  스님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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