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총림의 역할은 눈 밝은 공부인이 나오도록 하는 것, 도인이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해인총림 제9대 방장 원각 스님은 5월 6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7일 열리는 추대법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원각 스님은 해인총림의 위상과 퇴설당의 의미를 설명하며 수행의 중요함을 역설했다.
원각 스님은 “해인사에 안거 기간 동안 모여 수행 정진하는 대중이 5백여 명이 된다. 효봉 스님이 계실 때 가야총림으로 시작해 1967년 성철 스님이 주석하실 때 해인총림으로 모습을 완성했다”고 설명하며 “눈 밝은 도인이 나오도록 하는 것,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지 스님들이 뒷받침을 해서 총림이 여법하게 운영이 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각 스님은 주석처인 퇴설당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참선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퇴설당의 뜻은 ‘눈 더미’란 뜻”이라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눈덩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 말은 대중이 모여서 세상일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참선 공부하라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퇴설당은 한국불교 중흥조인 경허 스님이 구한말에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경허 스님은 선원을 개설하고 대중을 모아 정진했다. 원각 스님은 “은사이신 혜암 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하실 때도 이곳에 계셨다”면서 “은사 스님께서는 ‘공부하다 죽어라’는 법문 자주 하셨다. 공부 열심히 해서 생사 해탈하라는 의미다. 퇴설당의 이러한 역사를 잇고 해인 총림의 역사대로 열심히 정진하고 가풍 이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현대 선지식으로 모시고 수행 정진한 스님은 공부의 치열함이 없는 현재 수행 풍토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원각 스님은 “1967년에 해인사에 왔을 당시는 잠을 자려 누웠다가 잠에서 깨보면 1/3은 앉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깜짝 놀라 앉아서 함께 공부를 했다”면서 “요즘은 참구하고 묻고 하는 스님들이 없다. 성철 스님이 계실 때만해도 공양 후 차담도 하고 대중이 앉아 방장 스님의 법문을 듣곤 했다. 잘못을 하면 대중공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해인총림 방장 추대과정에서 대립과 불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가 해인사 대중이고 부처님 제자”라며 화합된 모습으로 지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원각 스님은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해인사 대중이고 부처님의 제자다. 등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내일 추대 법회에도 대원 스님은 참석하신다.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지 선출과 임기에 대해서 스님은 “동그란 구멍은 동그란 것으로 막아야지 리무진으로 막으면 안될 것”이라면서 “화합해 잘 지내야한다. 공익을 의논해서 주지 스님과 모두가 합리적으로 잘 돕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스님은 “조화스럽다는 말은 어떤 일을 처리 할 때 산중 구성원들이 공감 할 있도록 중지를 모으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넣으면 안맞다는 말이다. 서로 노력하면 총림도 달라지고 위상도 높아진다 ”며 원융 화합을 강조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국민들에게 스님은 본래 마음자리를 찾을 것을 당부했다. 원각 스님은 “세상이 많이 복잡해지고 과학이 많이 발달해서 살기가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리어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각박하다”면서 “부처님은 이런 세상을 두고 ‘불난 집과 같다’ 고 했다. 불을 꺼야 하는데 그 방법은 본래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일화라고 했다. 본래 입장에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이런 자세로 세상을 대하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서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원각 스님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스마트폰을 통한 SNS 사용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님은 “여지껏 구형 폰을 사용하다 최근 스마트폰을 구입했다”면서 “당장은 힘들겠지만 조금 더 익숙해지면 SNS도 이용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사본 -283378해인총림9대방장벽산원각스님.jpg


원각 스님은 1966년 해인사 입산, 1967년 혜암 스님을 은사로, 자운 대율사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비구계 보살계를 수지 했다. 법명은 원각, 법호는 벽산이다. 수계 후 해인총림에서 첫 수선안거 이래 통도사 극락암 선원. 송광사. 상원사. 봉암사. 범어사. 불국사 등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20여년간 정진했다. 이후 거창 고견사 주지. 백련불교재단 이사 및 조계종기본선원 운영위원. 선원수좌회 복지재단 이사. 선원수좌회 공동대표 그리고 해인총림 유나 등 대중소임을 맡아 수행공덕을 회향했다.

특히 재가불자 수행을 위한 원력으로 2002년부터 원당암 달마선원장으로 참선을 지도하고 있으며, '혜암선사 문화진흥회' 이사 소임을 맡아 은사스님의 유지계승 및 선양사업에 매진해 왔다
SNS 기사보내기
곽선영기자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