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영화가 비록 쾌락하지만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다. 이 네가지가 없다고 하면 어찌 내 마음이 기쁘지 않으랴. --불본 행집경 야수다라품--

오늘은 카피라국의 태자 싣달타가 왕궁의 영화와 아버지 정반왕의 기대,아름다운 부인 야쇼다라,귀여운 아들 라후라를 왕궁에 남겨둔채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출가를 단행한 날입니다.

온갖 애착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하여 진리를 찾아나선 참으로 뜻깊은 출가절입니다.싣달태자는 그 누구보다도 영화로운 생활를 누렸습니다.우리들이 행복의 전제조건으로 생각하는 모든것들,재산.명예.권력을 모두 갖춘 태자였습니다.그러므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싣달태자는 사랑하는 처자와 부왕의 곁을 떠나서 밤중에 몰래 성벽을 넘어 출가를 결행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매정한 결심과 행동을 하게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싣달태자는 출가하기전에 두가지의 길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세속적인 영화의 길이요,또 다른 하나는 성자로서의 진리의 길이렀습니다.

부처님께서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시어 온 국민의 축복을 받을때,정반왕은 나라안에서 제일가는 예언자인 아시타를 불러 아기의 장래에 대해서 물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시타는 왕자의 모습을 한동안 유심히 살펴보더니만 갑자기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시타는 눈물을 멈추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린 왕자에게는 서른 두가지의 좋은 상과 80가지의 상서로운 몸매가 있습니다.이런 분은 반드시 4천하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되거나,아니면 출가하여 반드시 정각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이 어린 왕자가 장성하여 전륜성왕이 되거나 부처님이 되시는 것을 볼 수가 없으니 그게 슬퍼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륜성왕이란 인도대륙을 통일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인도의 전설적인 왕을 말합니다.

예언자의 이 말은 싣달태자가 태어날때부터 왕위를 계승하여 주변의 여러나라들을 정복하고 인도의 전설적인 왕인 전륜성왕이 되어서 세속의 영화를 누릴것이냐? 아니면 출가수도하여 진리를 깨달아 붇다가 되어 온 인류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느냐?하는 선택의 숙명을 안고 태어나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속의 삶과 진리의 삶,두갈래의 삶을 놓고 싣달타는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싣달태자의 번민이 겉으로 드러난 최초의 사건은 농경제행사때의 일입니다.농경제란 봄이 되어 최초로 밭갈이는 하는 행사로 일종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해마다 이 행사에는 왕을 비롯하여 여러대신들이 참석하여 왕이 먼저 밭갈이를 함으로 시작되는 행사인데 어느해에는 태자도 이 농경제에 참가하여 신기한 듯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후 흙과 땀에 젖어 힘겨워 헐떡거리는 농부들의 모습이 애처러워 보였습니다.더군다나 태자의 마음에 더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자 쟁기로 파헤쳐진 흙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타났습니다.바로 그때 어디선지도 모르게 갑자기 새가 날아와서는 벌레를 쪼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끼리 서로 잡아먹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보자 태자는 더 견딜수가 없어서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나무 아래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자기 생영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것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이른바 약육강식의 현실입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먹이사슬을 통해서 이 세상을 본다면 결국 현실은 강한 자가 악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약육강식의 현장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성이 영민해서 남보다 더 깊이 생각을 했던 싣달태자가 이 사실을 가볍게 보아 넘길리 없었습니다.

싣달태자는 여기서 최초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깊은 명상에 잠겼던 것입니다.이를 <염부수하의 정관>이라고 합니다.마침 태자가 앉아 있던 나무가 염부수라는 보리수나무였기 대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싣달태자로 하여금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는 것입니다.어느날 태자는 동문밖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허리가 숩은 백발노인을 보고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다음 남문밖으로 나갔다가 병든 사람을 보고 질병에 시달리는 인간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서문밖으로 나가서는 상여행렬을 보고 생자필멸의 엄연한 사실을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태자의 심정을 볼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마는 것이다.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아무도 어쩔수 없이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을 어찌하랴!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이다.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우리의 앞에 있구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싣달태자가 찾아 나섰던 북문밖에서는 한 사람의 고고한 수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수행자는 미록 비쩍 마르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의젓한 걸음걸이와 빛나는 눈빛을 갖고 있었습니다.태자는 그 수행자로부터 "해탈의 길을 찾아 출가하였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한가닥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희망이 있구나.늙고 볃들고 죽는 속박의 삶에서 벗어날 해탈의 희망이 있구자"이렇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 사문유관으로 싣달태자의 출가의지는 확고하게 되었습니다.태자의 마음이 출가쪽으로 완전이 기운것을 눈치챈 정반왕은 크게 걱정합니다.그래서 태자의 마음을 붙들어 보려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삼시전(三時殿)을 따로 지어 계절에 따라서 아늑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별궁을 마련해 주기도 했고,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태자로 하여금 술과 여자의 환락속에 즐거움을 느끼고 출가를 단념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오히려 태자의 출가의지를 더욱 굳게하는 계기가 되었을뿐 부왕의 뜻대로 태자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한 것입니다.

부왕이 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태자를 즐겁게 하려한 것은 오히려 큰 오산이었습니다.어느날 태자는 연회가 끝나고 나서 피곤에 겨워 쓰러져 정신없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한 무리의 무희들을 보게 됩니다.

춤추고 놀때는 그토록 아름다워보이던 여인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든 추한 모습을 보고 태자는 여인의 아름다움,쾌락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가를 피부로 느낄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태자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더러움과 어리석어 꾀임에 빠지는 것은 여인의 몸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갖가지 의복과 구슬따위로 아름답게 꾸밈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속기 마련이다.그러나 그것은 미련한 짓,그림자와 같고 꿈같은 것으로 참된것은 아니다.'<불본집행경>

싣달태자는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그래서 우리들이 속기 쉬운 겉모습에 홀리지 않고 그 뒷면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비록 값비싼 옷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귀거리,팔찌,다이아반지를 끼고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다고 해도 우리 인간의 육체는 피와 고름 대소변이 가득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싣달태자는 일찍 이 사실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이제 출가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된 싣달태자는 정반왕에게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그러나 정반왕이 이 소청을 순순히 허락할 리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왕은 아들을 여러가지 좋은 말로 달래보았습니다.그러나 태자는 부왕에게 세가지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세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출가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세가지의 소원이 있습니다.이 세가지 소원을 아버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저는 흔연히 출가와 수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저를 언제나 늙지 않게 해주시고,저를 항상 건강하게 해주시고,저를 언제까지나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출가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이러한 태자의 요구를 들은 정반왕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것 아닙니까?

태자의 결심이 너무 굳어서 도저히 바꿀수 없음을 알아차린 정반왕은 이제 물리적으로 출가를 저지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신하들에게 성벽과 사대문의 경비를 엄히 하도록 분부를 내리고 태자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태자의 출가의지는 더 강해졌습니다.드디어 2월8일 밤이 되자 싣달태자는 마부 찬타카에게 몰래 칸타가라는 이름의 큰 말을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마부 찬타카가 끌고온 말을 타고 드디어 성문에 이르자 성문의 자물쇠는 저절로 열려 있었는데,태자의 출가를 갈망하던 수타회천왕이 신통력으로 자물쇠를 열고 성문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싣달태자는 몰래 성을 빠져나와 한동안 달려서,옛날 선인이 살던 숲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몸에 지니고 있던 마니보를 마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보배를 가지고 가서 부왕에게 드리고 이렇게 말해주기 바란다.'나 태자는 세속적인 욕망은 조금도 없으며 또한 선업을 쌓아 천상에 태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다만 일체중생이 바른 길을 몰라 헤매며 생사윤회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출가하는 것 뿐입니다.나는 나이가 적지만 생노병사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으며,지금 젊다고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예전부터 훌륭한 임금들은 나라를 내어놓고 도를 찾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그리고 수행도중에 세속생활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내 결심도 이와 같아서 무상보리를 얻을때까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이와 같이 전해 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몸에 지니고 있던 영락과 패물을 떼어 양모와 야쇼다라에게 전해주도록 하고,자기의 결심을 모든 친척들에게 전해주도록 마부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마침 그 때 사냥꾼이 한사람 지나가므로 태자는 자기의 비단옷을 사냥꾼의 옷과 바꾸어 입고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시타선인의 예언대로 싣달태자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기위해 출가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불자여러분! 지금까지 부처님,아니 아직은 부처님이 아닌 싣달태자가 어찌하여 왕궁의 영화를 버리고 출가를 하셨는지,어떤 과정을 거쳐 출가를 하셨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세속의 삶과 진리의 삶. 싣달태자는 이 두가지 문제를 놓고 고민하시다가 드디어 진리의 길을 찾아 출가를 결행하셨습니다.

참으로 장하고 거룩하신 결단입니다. 출가는 바로 온갖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재산과 명예.권력.처자권속이 이 모든것을 마치 헌신짝처럼 버리는것은 그보다 더 크고 값어치 있는 것이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고,늙고,병들어 죽는 문제의 해결-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싣달태자가 모든것을 버리고 출가한 날입니다. 오늘 크게 버리셨기 때문에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성도라는 큰 얻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생이별이라는 큰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성도 후의 영광스러운 만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출가절이 어떤 교훈을 주는지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께서 이미 2천5백년전에 헌신짝처럼 버린 쓰레기와 같은것들을 놓고 우리는 얼마나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까?

싣달태자는 2천5백여년전 오늘,모든것을 버리셨으므로 2천5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 인류의 대도사,사생의 자부로 이 세상에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본받아 버릴것은 과감히 버리는 용기를 가집시다.버림으로써 보다 더크고 영원한 값진 보물을 얻을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삽시다.

우리 다같이 일시적인 세속의 향락에 탐닉하지 말고 영원한 진리의 삶을 삽시다.다같이 성불합시다.

나무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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