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서기로 2014년,불기로는 2558년,단기로는 4347년이요,육갑으로는 말의 해인 갑오년입니다.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해마다 새해가 되면 육갑으로 무슨 년이다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계사년은 뱀의 해요,금년은 말의 해인데,이처럼 해마다 한 해를 상징하는 동물을 정하게 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러한 풍습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양3국인 한국과 중국,일본에서는 공통적인 현상인듯 싶습니다.여기에는 음양오행사상이 국민정신의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오행사상을 미신이라고 치부하고 천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실제로 음양오행사상이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점이 있기도 합니다.그러나 음양사상은 동양인의 정신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수도 없고 또 어떤 분야에서는 현대과학으로써 해결하지 못하는 점을 보충하는 역할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전적으로 부정한다는것은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고 봅니다.

여러분들도 대개 아시는바와 같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열두글자를 12지라고 하고 이 십이지를 각각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에 대비하여 이들을 십이지신이라 하는데 금년 갑오년을 말의 해라고 하는것은 오(午)라는 글자가 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해마다 정초가 되면 이 십이지신을 가지고 그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했다고 합니다마는 지금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보다는 새해를 보다 뜻있게 보내자는 의미로 연초가 되면 그 해의 띠에 해당하는 동물을 찬양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문명의 총아라고 할수있는 TV이나 신문등에서도 새해에는 으례히 그 해의 동물을 주제로하는 여러가지 기획들을 하는데,음양사상이 미신이라고 단정하는 기독교인들까지도 다같이 한마디씩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생각해보면 아마도 우리 중생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좀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중생심에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해마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몸가짐을 바르게하고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로 삼아왔습니다.이 첫날이 앞으로 한 해의 길흉을 좌우한다 하여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습니다.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는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금년의 띠에 해당하는 말은 12지 가운데서는 일곱번째에 해당하는 오(午),오는 일년 중에서 5월에 해당하고 하루로 치면 대낮에 해당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첫오일은 <삼오일.말날>이라고 해서 팥떡을 만들어 마굿간 앞에 차려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빌었다고 합니다.또한 우리 민족이 말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고 있음은 꿈에 관한 해몽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말에 관한 꿈은 어떠한 내용이던 길조(吉兆)로 여기고 있습니다.

꿈에 말을 타면 세력을 얻거나 기세를 떨치고 귀한 협조자를 만난다고 해몽을 하고,말이 울면 말을 탄 사람의 이름이 널리 퍼지고,말이 집 가운데 있으면 아들 소식을 듣게 되며,말이 사람을 물면 벼슬길에 나가거나 이름을 얻게되는 길몽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말과는 매우 밀접한 인연을 맺어왔는데 현대의 말은 4천5백만년전에 살았던전에 효마(曉馬)를 그 조상으로 하고 있습니다.이 말의 조상은 화석으로 발견되었는데,강아지 정도의 크기로 앞발은 발가락이 넷이고 뒷발은 발가락이 셋으로 지금의 말과 매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현대의 말과 같은 해부학적인 특징을 갖춘것은 약1백만년 전이라고 합니다.

말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아마 중국의 복희(伏羲)씨때에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왔다고 하는 전설이 아닌가합니다.이 그림을 하도(河圖)라고 합니다.하도는 동서남북 중앙으로 일정한 수로 나뉘어져 배열된 쉰 다섯 점의 그림인데,이 그림에서 역(易)의 기초인 사상팔괘(四象八卦)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희씨라는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용마라는 것도 전설적인 동물로서,실제의 말이 아니고 상상속의 동물이기 때문에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역(周易)의 기초가 되는 하도를 말이 가지고 나왔다 하는것은 말을 신성시 했기 때문에 그런 설화가 창작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 말이 들어온 곳은 문헌상으로는 약2천5백년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말을 타고 다니며 철기를 사용하던 기마철기인들이 몽고지방으로 부터 중국북부와 만주벌판을 거쳐 한반도에 도달하여 그보다 먼저 이땅에 정착해서 살던 농경위주의 원주민을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던 말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관련된 설화로 고려시대의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등장합니다.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는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과 관련된 설화입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은 본래 이름이 주몽인데,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하백의 딸인 유화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해모수가 유화를 유인하여 정을 통한 후 다시 돌아오지않자 유화는 집에서 쫓겨나 귀양살이를 하던 중에 부여의 왕 금와에게 발견되었는데,왕이 이상하게 여겨 유화를 데려다가 방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그 방에 햇빛이 비쳐왔는데 그녀가 이를 피하려고해도 햇빛은 그녀를 따라 다녔습니다.그 후로 유화에게 태기가 있었고 얼마후에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들이만 하였고,그 속에서 나온 아기가 바로 주몽이었다는 것입니다.

부여의 왕 금와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어서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그들이 모두 주몽에 비해 열등했습니다.그래서 주몽을 시기했는데,아들 가운데서 장남 대소가 왕에게,"주몽은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니니 일찌기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염려됩니다."하고 진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말을 듣지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했습니다.주몽은 좋은 말을 가릴줄 알아서 좋은 말에게는 먹이를 조금 주어 여위게 하고 나쁜말에게는 먹이를 잘주어 살찌게 했습니다.왕은 그런줄도 모르고 살찐말은 자기가 타고 여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습니다.

후에 왕이 주몽을 죽이려고 하므로 주몽은 비록 여위기는 했지만 좋은 말을 타고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고,마침내 고구려를 세우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 설화에서는 주몽이 좋은 말을 볼줄 알았기 때문에 생명을 건졌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하는 단순한 내용입니다.그러나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와 말에 관한 설화는 이보다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의 경상도 지방인 진한땅에는 옛날에 여섯 촌락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왕은 없었는데 하루는 육촌의 촌장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한 촌장이 말하기를"우리들은 위에 백성을 다스릴 임금님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제 마음대로 하게 되었소.덕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소?"

촌장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여 다같이 임금될 사람을 찾아 나섰는데,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산이름)밑 나정(蘿井=우물이름인듯 함)곁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처럼 땅에 비치는데 흰 말 한 마리가 꿇엉 앉아 절을 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촌장들이 그곳에 찾아가서 살펴보니 붉은 알 한개(혹은 푸른알이라고도 함)가 있었는데,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다랗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그 알을 깨어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촌장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 아이를 동천에서 목욕시켰습니다.그랬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서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지므로,그 일로 인하여 그 아이를 혁거세왕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혁거세란 말은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스님의 견해에 의하면 순수한 우리말로,<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설화에서는 이 시기를 원년 임자라고 했는데,서력 기원전 69년에 해당하므로 약 200년 전쯤에 신라가 건국되었고,혁거세왕은 바로 말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니 앞서 말한것처럼 말을 타고 온 기마민족들이 육촌으로 갈라져있던 진한을 정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일을 상징하는 설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나 신라의 고분에 그려진 벽화에서 말그림이 많이 발견되고, 흙으로 만든 말인형이나 말안장 등의 마구(馬具)등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신라사람들은 말을 신성하게 여겼고, 죽은 후에도 저승길을 말을 타고 간다고믿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특히 흰말을 신성하게 여긴 증거가 있는데, 백제와 신라가 서로 혼인을 하고 동맹을 맺을 때 박마의 피를 뿌려 하늘에 맹세했다는 기록이 있고, 경주 천마총 벽화에서 발견된 말그림도 백마상이라는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을 신성한 동물로 여긴 전통은 신라를 이어받은 고려에서도마찬가지였습니다. 고려의 태조왕건은 말의 신(馬神)을 수호하는 별이라고하는 천사성(天駟星)을 제사하기 위해 도성안에 마조단(馬祖壇)을 설치했고, 조선시대까지도 이 마조단은 동대문 밖에 남아 있었는데 19세기말에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말에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징기스칸이 아시아 대륙만이 아니라 유럽까지 쳐들어가서 유럽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원동력은 민첩한 기마병들에게서 나왔던 것이고, 만리장성을 쌓고 북방오랑캐라고천시했던 몽고족에게 중국이 유린당하고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일도 모두 몽고족이 말을 잘 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말은 과거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고, 또 소도적을 치룰 수 있는 유일한 병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에 얽힌 일화가 수없이 많은데 말이 당ㄴ지 잘 달리는 동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고동락을 해 온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화들이 많습니다.

인도의 <샨 하지 가마루> 라는 사람은 1635년 전투에서 적장과 싸우다가 무운이 다해서 적의칼을 맞고 목이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몸은 말안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충실한 그의 말은 목없는 주인을 태우채 전장을 떠나서 집까지 40킬로미터, 리수로는 백리길을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말을 위로하는 한편 그 목없는 시체를 잘 꾸민 석조묘(石造墓)에다 모셨는데 그 무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고 합니다. 훗날 그 부근에 이슬람의 사원과 인조호수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목없는 성자가 된 '가마루'를 예배하려고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해마다많은 사람들이 이 지방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명장 임경업장군은 반대파인 김자점의 모략으로역적으로 몰려 곤장을 맞고 죽었는데(서기 1640), 마부가 임경업장군이 평소에 타던준마를 가리키며 "짐승은 무지해서 주인이 죽어도 모른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은 먹기를 그만두고 크게 소리내어 울더니 피를 토하고 죽어볐다는 것입니다.

또 신미양오 때(愼未洋擾 = 1871년 미국 군함이 강화도를 침공했던 사건), 강화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말도 주인을 따라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말은 키가 5척이면 구(駒), 7척이면 내, 8척이 넘으면 용마(龍馬)라 불렀고 힘센 말은 융마, 작은 말은 현구(玄駒)라고 하는데, 한국 재래종은 따로 과하마(果下馬)라고 합니다. 과하마란 키가 작아서말을 탄채로 과일나무밑을 지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말은 준마(駿馬)라고 하는 반면에 둔한 말은 노태라고 합니다.

말과 관계 된 중국의고사(故事) 가운데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매우 교훈적인 명언도 있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인생의 행운과 불운은 예측할 수가 없으므로 무턱대로 기뻐하거나 슬퍼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 국경근처에 길흉을 잘 판단하는 한사람의점술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기르던 말이 이유도 없이 도망하여 오량캐 땅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이를 보고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위로를 하자, 노인은 "이것이 어찌 복이 될 징조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몇개월 뒤에 그 도망간 말이 오랑캐의 말을 데로고 돌아왔습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이번에는 축하를 하자 "이것은 불행을 지초하는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말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티고 놀다가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찾아와 위로를 하자 노인은 "이것이 오히려 행운을 안겨다 줄지도 모른다"하고 태연해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후, 오랑캐 사람들이 쳐들어 와 젊은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가 다 죽었으나 노인이 아들만은 불구의 몸이라 전쟁터에 나가지않게 되어 불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사에서 유래하여인가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도님들 가운데는 대학입시에 자녀가 실패를 해서 우울하신 분도 있습니다. 기도도 하고 노력을 할만큼 했는데도 낙방을 했으니 낙심천만일 것입니다. 부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대학나온 실업자가 40%나 되는 현실이므로 오히려 대학을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자녀가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각도로 재수해서 뜻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다음으로는 말에 관하여 부처님이 하신 말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최초로 불경에 나오는 말은 부처님께서 출가할실 때 타셨던 '건척'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범어로는 '칸타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보통의 말보다는 훨씬 크고 힘센 준마였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잡아함경33 양마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라자그라하성 칼란타 대마무 숲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세가지 좋은 말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이른바 어떤 말은 빠르기는 완전히 갖추었으나 빛깔과 형체는 갖추지 못하였다. 어떤 말은 빠르기와 빛깔은 완전히 갖추었으나 형체 는 갖추지 못하였다. 어떤 말은 빠르기와 빛깔과 형체를 완전히 갖추었다. 이와 같이 법.율에도 세가지 착한 남자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빠르기를 완정하게 갖춘 사람이란 사성제를 잘아는 사람을 말하고, 빛깔을 완전히 갖춘 사람이란 법과 유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질문에 능히 해설할 수 있는 사람이며, 형체를 완전히 갖춘 사람이란 이름 높은 큰 스승으로서 여러 가지 의약과 도구를 고마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셨습니다.

또 사경에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말이 있어 네가지 능력을 갖추는데, 그것은 임금이 타는 말이다. 어떤 것이 넷인가? 이른바 착함.빠름.참음.부드러움이 다. 이와 같이 착한 사람은 네가지 덕을 성취하여 세상이 받들고 존 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는 바로서 위없는 복밭이된다. 이른바 그 착한 남자가 성취한 것은 더 배울 것 없는 이의 계율의 몸, 선정의 몸, 지혜의 몸, 해탈의 몸이니라"

또 잡아함 편영경에는 세상에는 네가지의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제1의 양마는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 마부의 뜻을 알아 빠르고 느림을 조절하는 말을 말하고, 제2양마는 채찍으로 그 꼬리나 털으 ㄹ건드리면 마부의 뜻을 알아서 빠르고 느림을 조절하는 말을 말하고, 제3 양마는 채찍이 몸에 닿으면 마부의 뜻을 따르는 말, 제4 양마는 쇠사슬이 든 채찍을 맞아 뼈가 상한 뒤에야 마부의 뜻에 따르는 말을 일컫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에 있어서 네가지의 종류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네가지 부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이 수행자에게 있어서 넷인가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양마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다른 마을에서 남자나 여자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받느다는 말만 듣고도 바른생각에 의지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직접 보지않고 부처님의 가르침만 듣고도 생놉ㅇ사의 이치를 생각하고 무상한 육신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하는 뜻입니다.

둘째, 양마에 해당하는 사람은, 말만 듣고는 두려워 하지 않다가 직접 다른 마을에 가서 그 현장을 목도하고 나서 비로소 바른 생각에 의지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의 생노병사에 대한 가르침을 믿지 않다가 직접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현장을 현실적으로 체험한 연후에 비로소 부처님의가르침에 의지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양마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웃 부락사람들의 생노병사에 대한 소식을 듣거나 또는 직접 보고도 바른 생사관의 갖지 못하다가 자기와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죽는 고통을 보고서야 비로서 바른 마을을 내는 경우입니다.

사람들, 특히 우리 불자들은 생사문제에 초연한 듯 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이나 혈육이 죽게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인생무상을 느끼는 수가 많습니다. 이처럼 자기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 병들거나 죽는 고통을 체험한 후에야 부처님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이 세번째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양마에 해당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남이나 일가친척 또는 혈육이 병고에 시달리거나 죽음의 고통을 호소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가가하다가 막상 자기 자신이 병들거나 죽에 될 때야 비로소 이 세상이 모두 괴로운 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건강하고 잘살 때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기세등등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자기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비로서 부처님을 찾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말을 비유로 들어서 우리 인생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말의 해인 갑오년을 맞아서 네가지 말 가운데 어떤 말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말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시간관계로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고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경전에 무섭게 생긴 말머리를 가진 마두관음이 있고 지옥에도 마두옥졸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말에 대한 불교의 인식은 용맹스럽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마두관음은 축생도의 교주로써, 무량수불이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보살로 6관음보살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우리 불자들은 관셰음보살님이라고 하면 모두 자비스럽고 인자한 분만 생각하게 되는데 이 마두관음은 유일하게 분노한 모습의 보살님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말을 신성하게 여겼고 말은 매우 의리깊은 동물이며, 경정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등장하여 중생교화의 사명을 맡고있다는 사실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어느 해이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충실히 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왕 갑오년은 말의 해라고 해서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경가운데 좋은 말이 갖춘 네가지 능력을 본받도록 합시다.

좋은 말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능력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착한.빠름.참음.부드러움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이 네가지 덕을 갖추면 명마가 되지만 사람이 이 네가지 덕을 갖추면 "세상이 받들고 존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는 바로써 위없는 복밭이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다같이 이 부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갑오년을 모든 사람의 복전이 되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불교 설법 연구원편 법천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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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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