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는데,항상 추석 때처럼 잘먹고 잘입고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이 담긴 속담입니다.과거에 추석명절은 이처럼 일년 삼백육십오일 배부르고 즐겁기를 바라는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희망사항이 깃든 즐겨운 명절이었습니다.

얼마나 헐벗고 굶주리면서 죽을 고생을 했으면 이런 희망사항이 속담으로 전해져올까? 잘먹고 잘입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여러분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우리네 조상님들은 평소에는 못먹고 못입고 뼈빠지게 일만 하고 살다가도 추석날 하루만은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잘먹고 즐겁게 놀았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전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추석이라고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아마 대부분 차례상에 오르는 송편이 생각나고,해마다 시골을 찾는 수백만의 귀성객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그런데 무엇이 하나 빠졌지요?

보름달이지요? 뭐니뭐니해도 둥근 보름달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추석"하면 누구나 둥근 보름달을 연상하게 되잖아요?

"달달 무슨 달,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하는 동요도 있고,청양지방에는"달아 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저기 저기 저 달 속에/계수나무 박혔으니/옥도끼로 찍어내고/금도끼로 다듬어서/초가삼간 집을 짓고/양친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민요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태백은 달밤에 강가에서 술을 마시다가 물속에 비친 달보습을 보고 그 달을 잡으려고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고사도 있고,영국의 작가'서머셋 모음'은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통해 오직 예술만을 위해 가정과 타인의 생활을 희생시킨 한 화가의 생애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다녀온 후로 달에는 옥토끼는 고사하고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 달에 대한 신비로움이 한풀 꺽이기는 했지만,달이 옛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까닭은 캄캄한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도 하지만 달은 태양과는 달리 그 빛이 강렬하지 않고 은은해서 마치 사랑하는 애인과 같은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 달을 우리 불교에서는 마음을 가르키는 비유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심월(心月)이라고도 하고,만월(滿月)을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에 비유하고,진리를 달에 비유하여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달은 사람의 본성(本性)이다.그러므로 구름을 벗어난 달은 그렇게 밝다"고도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달과 관련해서,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무렵에 설하신 열반경 가운데 "달비유품"의 내용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저 달처럼 항상 이 세상에 계시다는 것과 우리들 모두,자기자신 가운데 있는 보름달을 찾아내 성불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대반열반경이라는 경전은 부처님이 80세의 인간수명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 경전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많은 제자들은"부처님이란 위대하신 분이므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참으로 깨달으신 부처님이라면 어찌 보통 사람들처럼 백년도 못살고 죽으랴!"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승천했다고 하는데 부처님은 한번 죽은 후에는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없었지 않는가?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고,부처님처럼 위대한 분이라면 오래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중생들을 교화하실 일이지 왜 보통 사람들처럼 80살만 사시고 세상을 떠나셨을까?우리들과 별다른 점이 없는 걸로 보아 그다지 훌륭한 분이 아니지 않는가?이런 의심을 하는 불자들도 더러는 있으리라 봅니다.

다른 종교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옳고 그른것을 가리는 것은 바른 믿음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얼마전에 전철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개합니다.

기독교를 전도하는 사람이 목청을 돋구어"예수 믿으면 천당,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외치고 다니다가 마침 좌석에 앉아 있던 스님에게 다가가 고함을 지르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 나셔셔 부활승천했는데 석가모니는 죽어서 재로 변해 버리지 않았소.죽은 종교는 믿어서 무엇하오.산 종교를 믿으시오.부활의 종교를 믿으시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스님은 가소로워서인지,시비가 싫어서인지는 모르나 아무말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습니다.그러자 전도인은 더 신이 나서"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나셨소.석가모니는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도 없었지않소.산 종교를 믿으시오.예수 믿고 천당갑시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한분이 그 전도인을 향해서 한마디 쏘아댔습니다. "죽을라면 아주 죽고,살라면 아주 살지,죽었다 살았다 왜 헛갈리게 한다요.살아났으면 땅에서 살지 왜 하늘나라로 간다요.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데 하늘나라로 갈라면서 무엇 때문에 살아나서 사람들을 놀래게 했다요?" 그러자 전철안은 그만 웃음바다가 되어버렸고,전도인은 슬그머니 다음 칸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더러는 "불교는 죽은 종교"라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죽었다"하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부처님이 열반하시려고 할 때에도 많은 제자들이 슬퍼하면서 부처님께서 오래오래 이 세상에 머물기를 간청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서 부처님이 출현과 열반,즉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죽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컨데 마치 사람들은 달이 뜨지 않음을 보고는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다른 지방에서는 달이 뜰때 그 지방 중생들이 달이 떴다고 하지만 달의 성품은 참으로 나는 일이 없음 같으니,왜냐하면 수미산이 가리워서 나타나지 못할지언정 달은 항상 있는 것이어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니라.

여래.응공.정변지도 그와 같아서 여래가 삼천대천세계에 나타나 혹 남섬부주에서 부모를 가지게 되면 중생들은 말하기를 남섬부주에 부처님이 나셨다하고,일부러 열반을 나타내면 여래의 성품은 진실로 열반이 없지만는 중생들은 모두 여래가 참으로 열반에 들었다함이 달이 없어졌다는 것과 같으니라.선남자여,여래의 성품은 나고 없어짐이 없건마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났다 없어졌다 하는 듯이 보이느니라"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지요? 본문 가운데 <여래.응공.정변지>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부처님의 이름은 이 밖에도 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 등이 있습니다.이러한 이름들을 부처님의 십대명호라고 하는데 각각 깊은 뜻이 있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미산은 인도 설화에 나오는 산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산의 이름입니다.<수미산이 가리워서>라는 말을 현대 과학적인 말로 바꾸어 <지구가 가리워서>라고 하면 이해하겠지요?

달이 뜨고 지는 현상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이미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배워서 잘 알고 있지요?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 달이 새로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여러분들도 잘 알것입니다.

열반이란 여기서는<부처님이 돌아가심>을 의미합니다.다른 갚은 뜻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부처님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경전의 핵심내용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열반에 들고 하시는 것은 마치 달이 떴다가 지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달이 지는 현상은 달이 단지 우리들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된 물리적인 현상일 뿐이지 달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부처님의 열반도 우리 중생들 눈에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지 부처님이 돌아가셨다던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어떤 모습으로 계실까요? 이 우주 어느 곳에나 계시고,<여래의 성품>으로 계십니다.그러면 <여래의 성품>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비유를 들어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갖가지의 전기제품이 있지요?그런데 그 전기제품은 한결같이 전기가 있어야만 그 기능을 다 할수 있습니다.여러분들이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외국가수의 팝 뮤직도 전기가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비록 오디오가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기는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전등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저것이 전기다!"할 지 모르지만 전기는 색깔도 모양도 없는데,빨간등에 켜면 빨간빛이 되고,파란 등에 켜면 파란색이 됩니다.둥근 전등에 켜면 둥글고,네모난 전등에 켜면 네모난 형태가 됩니다.그러나 전기 자체는 파란것도,붉은것도 아니고 둥근것도 네모난 것도 이니지 않습니까?

왜냐? 전기는 에너지로서 색깔도 모양도 없기 때문입니다.바로 이러한 것이 전기의 성품입니다.그렇지만 전등을 통해서는 밝은 빛을 내고,냉장고의 모터를 돌려서 시원한 음료수를 공급하고,온갖 편리한 일을 다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발전소에 있을까요?배터리에 있을까요?

물론 각종 발전소에서 발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또 건전지에 충전을 시켜둠으로써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만,전기는 발전소에 있는것이 아니고 건전지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일 발전소에 있다면 발전소만 많이 만들면 전기는 남아 돌 것이 아닙니까?

발전소가 없다면 전기가 없는 것이냐하면 그렇지 않지요?여러분의 머리카락에서도 정전기가 발생하고,'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있듯이 하늘에서는 벼락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전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이미 학교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를 배웠으이라고 믿는데,전기는 어디서 나옵니까?

전기는 물질 안에 있는 전자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에너지를 말하기 때문에 모든 물질에서 나옵니다.따라서 이 세상 어디에나 전기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세가지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이라고 하는데,우리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나타나신 석가모니부처님을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하고,서방정토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처럼 오랜 세월동안 수행을 쌓아서 그 과보로 얻게 되는 몸을 보신불이라고 하는데,화신불이나 보신불이 전등이나 냉장고라면 법신불은 물질속의 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그 모습이나 색깔이 없듯이 법신도 모습이 없는데,이처럼 모습이 없이 계시는 부처님을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하고,열반경에서 말씀하신 < 여래의 성품>은 이 법신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 여래의 성품>은 나고 죽음이 없습니다.뿐만 아니라 필요가 있으면 인연따라 천만가지 형상으로 화신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법신의 부처님,<여래의 성품>이 어떻게 우리 불자들에게 나타나시는가?여기도 나타나시고 저기도 나타나시고 하시자면 정신없이 바쁘실텐데 그 일이 가능할까?어떻게 수없이 많은 중생들의 기도에 일일이 감응하실 수 있을까?이런 생각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원리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한문으로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천 강에 물이 있으면 천 강에 달이 뜬다"고 하는 뜻입니다.비록 하늘에는 달이 하나 밖에 없지만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이 비치듯이 부처님의 법신은 한 분이라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부처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방송국과 텔레비젼을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방송국은 하나지만 시청자는 수천만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 전기란 물질 안의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힘이라고 했고,그러기때문에 이 세상에는 전기가 없는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전기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언제 나타납니까?

방송국의 옆집에 살아도 텔레비젼 수상기가 있어야 하고 텔레비젼 수상기가 있어도 스위치를 켜야만 화면이 나타나고,정전기도 물건을 서로 비벼야만 나타나는 법입니다.

어느 곳에나 전기가 있지만 음전기와 양전기가 서로 만날 때 비로소 그 힘이 나타나듯이 부처님의 법신도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충만해 계시지만 인연이 있는 곳이라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처님을 나타나시게 하는 인연은 무엇일까요? 바로 여러분의 신심입니다.마치 전기가 음극과 양극이 서로 만나야만 작용하듯이 부처님을 믿는 간절한 마음이 작용할때만 부처님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비록 2천5백여년 전에 열반에 드셨지만 법신은 항상 우리 주변에 계십니다.마치 한낮에는 달을 볼 수가 없지만 달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그러나 신심이 없으면 어디에나 계시는 부처님의 법신을 친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름달과 관련해서 부처님의 법신인<여래의 성품>은 항상 이 우주에 충만해 계신다는 것과 신심이 있어야만 부처님이 감응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여래의 성품>을 달리 말하면 불성(佛性)입니다.불성은 <부처의 성품>을 줄인 말인데,이 불성은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특허품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다같이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본질입니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널리 일체 중생을 살펴보니 모든 중생들이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더라" 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이란 곧 앞서 열반경 말씀의<여래의 성품>이며,지금 말한 불성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여러분이나 저는 부처님처럼 되지 못하고 이처럼 보통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구름 탓입니다. 보름달이 아무리 밝아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면 8월 대보름 한가윗날이라도 보름달은 고사하고 조각달도 볼수 없지 않습니까?바로 그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불성을 가린 먹구름 때문에 부처가 되지 못하고 괴로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커먼 먹구름이 끼어 있는 사람,조각구름이 가리워져 있는 사람 등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불성이라는 둥근 보름달에 구름이 끼어 있어서 생사윤회를 하고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성을 가린 구름을 무엇일까요? 전문적인 용어로는 한자로 <없을 무,밝을 명>자를 써서 무명(無明)이라고도 하지만 쉽게 말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세가지의 나쁜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낀 먹구름을 걷어내고 성불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봅니다.그런데 성불이란 없는 것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 가운데 있는,저 8월 대보름달처럼 환한 본래 타고난 성품을 되찾자는 것이므로 성취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불자여러분! 여러분이 불교를 믿는 목적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서 자손이 장성하고 건강하며 권력가가 되고 재벌이 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떤 목적이어야 하는가? 여러분 자신 가운데 들어있는 다이아몬드 보다도 더 값진 진귀한 보배,저 보름달처럼 원만한 본래 마음인 이 불성을 회복하여 완전한 인격자가 되고,모든 인류를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원대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여러분은 가정이나 학교,직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마음의 보름달을 찾아 성불하는 날까지 열심히 노력합시다.

성불하십시요!

불교설법연구원 편

법 천 스님 옮김
SNS 기사보내기
법천스님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