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으로 고요히 법계를 비추보니 성현범부 뭇 생령들이 한집 이루어 살고 있네"

오늘은 인등의 공덕에 대해서 몇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앞에 든 게송은 옛날 중국에 장졸이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이 이 도를 깨치신 후에 읊은 시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신앙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불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부처님의 가피로 집안에 우환이 없으라고 부처님을 찾는 사람도 있도,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절에 다닌다는 신도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45년간 설법하신 일을 두고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병에 따라 약을 쓰는 처방을 달리하셨다는 말입니다.배 아픈 사람에게 소화제를 주고 감기든 환자에게는 쌍화탕을 주는 것이 병에 따라 약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기에 쌍화탕이 잘듣는다고 배아픈 사람에게도 쌍화탕을 권하는 의사는 어리석은 의사입니다.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병에 따라서 달리 써야하고,체질에 따라서도 다른 처방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의 마음 아픈 곳을 잘 가려내서 그에 꼭 맞는 처방을 주셨습니다.그래서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진리의 왕이므로 법왕이라고도 하지만,의사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의사이시므로 의왕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던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마음에 병이 듭니다.그러므로 부처님은 소원을 이루어주심으로써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셔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냐?하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값진 소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묘법연화경>을 통하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불아 부처님께서는 어떤 일대사인연으로 이 땅에 출현하셨는가?부처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보이고,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시려고 이 세상에 출현하셨느니라"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목적을 말한 것입니다.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에게 부처임의 지견을 다시말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보여주시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부처님처럼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음을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일체중생을 모두 성불하도록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부처님의 지견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지견이란 지혜롭게 세상을 보는 눈이요,슬기로운 안목입니다.진리를 바로 보는 눈입니다.현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 눈이요,이 눈은 바로 지혜로운 마음의 눈입니다.

우리가 만일 부처님의 지견을 얻어서 부처님처럼 세상을 바로 볼 줄만 안다고하면 우리는 별도로 다른 소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더 이상 바랄것이 없기 때문입니다.사실 우리 중생들의 소원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지견에서 보면 마치 아침이슬과 같고,무지개와 같은 허망한 것들 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건강하다해도 그것은 잠시 잠깐일뿐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러나 부처님의 지견을 얻으면 그것은 무한한 것입니다.영원한 행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앞에 든 장졸스님의 시에, "밝은 빛으로 고요히 법계를 비춰보니,성현 범부 뭇생령들이 한 집 이루어 살고 있네"라고 하였습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성인과 범부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눈을 뜨면 이 세상이 바로 극락세계와 다름없다고도 합니다.부처님의 지견을 얻어 세상을 살면 번뇌와 보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부처님의 지견을 얻으려면 바로 밝고 밝은 빛을 찾아야만 합니다.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환하게 걸림없이 비춰볼 수 있는 빛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이 빛은 어떤 불빛이냐?어떤 광명이냐? 그것은 바로 지혜의 광명입니다.반야낭지라야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사월초파일이면 모두가 등불을 밝힙니다.부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경사스러운 날 너도 나도 등불을 밝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이 땅엥 오셔셔 지혜등불을 밝혀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걷도록 인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또 우리도 부처님처럼 우리들의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켜서 마음 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고 밝은 지혜의 광명을 되찾아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들의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는 칠통같은 어둠을 몰아내는 일입니다.우리의 마음은 본래 부처님처럼 지혜광명이 구족한데,무명이 뒤덮혀서 이 지혜광명이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 어둠,우리 마음속의 무명을 몰아내고 반야광명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4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누구나 등불을 밝혀 마음속의 어둠을 물리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생이 괴로워하는 것은 바로 이 어둠때문입니다.하는 일이 잘 안되는 것도 이 어둠이 우리의 마음을 뒤덮고 있어서 온갖 나쁜 업을 지어왔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발길을 걷다가 넘어지고 개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듯이 우리 중생들은 어두운 마음으로 인해서 갖가지 고통을 당합니다.실패를 합니다.괴로워 합니다.

이 어둠만 우리 마음 속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부처님과 꼭같은 지혜를 얻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그러면 이 어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나하는 것입니다.

지혜광명을 덮고 있는 어둠의 정체는 다름아닌 삼독심입니다.탐심,진심,치심이 바로 마음을 어둡게 하는 원흉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독이 되는 마음을 참마음으로 알고 살아갑니다.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은 이와 반대로 보시하고,참고,지혜로움으로 가득찬 마음입니다.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삼독의 먹구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턱없는 욕심을 부리고,남을 원망하며 성내고,무지개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생활을 하느라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삼독의 먹구름,두꺼운 무명은 쉽사리 걷히지를 않습니다.근기가 약한 탓도 있고 세상이 험해진 탓도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속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사월초파일에도 불을 밝히고 평소에도 부처님앞에 인등을 밝혀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잘 안되니까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려고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과거세에 연등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으셨는데,석가모니부처님에게 수기를 주신 부처님의 이름인 연등은 등불이라는 뜻입니다.광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부처님께 등불을 올리는 등공양의 공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영험담이 많습니다만,그 중에서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일화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의 일입니다. 인도의 마가다국에 <난다>라고 하는 한 가난한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이 노파는 가족도 친척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았습니다.<난다>는 이거리 저거리로 떠돌아다니면서 그날 그날 남의 집 일을 해주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불쌍한 나이든 할머니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온 성안이 떠들썩했습니다. 그 나라의 임금이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위하여 그날 밤에 수천개의 등불을 밝히려고 여기저기 시내의 길거리마다 등불을 매다는라고 소란했던 것입니다.

<난다>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임금님은 복을 많이도 짓는구나!부처님처럼 위대한 성자,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분이 오셨는데 나는 가진 것이 아우것도 없어서 부처님께 공양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할까?나도 등불을 하나 켜 부처님께 공양을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 <난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을 하여 동전 두닢을 얻어가지고 기름집으로 갔습니다.기릅집 주인은 가난한 <난다>가 기름을 가려하자,"난다여,그대는 끼니조차 어려운 처지가 아니오?어찌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않고 기름을 사려하오?"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자 <난다>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다행히도 저는 부처님이 계시는 세상에 태어나 부처님과 한 세상에 살면서도 너무 가난하여 지금껏 아무것도 공양할 수가 없었지요.그런데 오늘 임금님께서 등불을 공양하신다고하니 나도 작은 정성이나마 부처님께 등불을하나 밝혀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기름집주인은 돈대로 하면 두 홉만 주어도 되는데 세홉을 주었습니다.<난다>는 기쁜 마음으로 그 기름으로 작은 등불하나를 켜 부처님이 계시는 절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등불을 밝히면서"이 적은 기름으로는 반 밤도 못가겠구나"생각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서원하기를"만약에 제가 후세에라도 도를 얻게 되다면 이 불이 밤새 꺼지지 않으리!"하고 절을 한뒤 물러갔습니다.

그날밤 그곳에는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고,초저녁에 켜놓았던 등불은 모두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왕이 부처님께 공양한 수천개의 등불들도 모두 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등불 하나만은 세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더 밝고,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그 등불은 바로 가난한 노파가 구걸한 동전 두닢으로 바련한 보잘것 없는 <난다>의 등불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목련존자가 손으로 이 등불을 끄려고 했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가사자락으로 끄려고해도 역시 꺼지지 않았습니다.신통제일이라는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도 등불은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부처님은 목련존자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두어라.그 등불은 가난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기도와 정성으로 밝혀진 등불이다.그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그러한 공덕으로 그 여인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하게 되고,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고 하리라"하고 수기까지 주셨습니다.

한편 이 말을 들은 왕은 속으로 못마땅해서 신하를 불러 물었습니다. "나는 부처님과 여러 스님들에게 큰 보시를 했고 수천개의 등불을 켜서 이처럼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도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내게는 칭찬을 해주시지 않고,고작 등불 한개를 바친 <난다>만 칭찬하시는가?"

그러나 신하는 왕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생각으로는 이루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그것은 작은 보시로도 이룰 수 있지만 반대로 수 많은 보시로도 얻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대왕께서 하신 일을 비록 크기는 하지만 마음은 한결같이 착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가난한 여인 난다는 그 마음이 한결같이 착하였고 정성스러웠습니다.자기가 행한 착한 일을 내세우거나 자랑한다면 그 값어치는 그만큼 작아지고마는 것입니다."

왕은 이 신하의 말을 듣고서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불자 여러분.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源功德母)라 하지 않습니까? 믿음이 도의 근본이요,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비록 왕의 수천개의 등은 장엄하기 비할데 없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모두 꺼지고 말았습니다.그러나 가난한 노파<난다>의 신심어린 작은 등불은 세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밝게 빛나고 목련존자가 일부러 끄려고해도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비록 작은 등이지만 그 등은 <난다>여인의 전재산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난다>는 이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서원을 세운 공덕으로 후일에 수미등광여래라는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까지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이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어둠에 덮혀있기 때문입니다.이 어둠의 가장 큰 몫은 바로 탐욕입니다.과도하게 욕심내고,움켜쥐고 살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탐욕을 버리고 지혜의 등불을 밝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면 우리의 앞길에는 어떤 장애도 없습니다.거기에는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호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부처님전에 인등을 밝히는 근본의의를 깨닫고 불보살님께 복을 빌고 가호를 기원하는데만 그치지말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무명을 제거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간직되어 있는 지혜의 등불을 밝힙시다. 다 같이 성불합시다.

<불교설법연구원 편>

<법 천 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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