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14일 군청 재난종합상황실에서 임창호 군수, 손병규 부군수, 실과소장, 용역사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11월까지 진행한 ‘함양 백용성 선사 화과원(華果院)유허지 국가사적 승격 지정 용역보고회’를 개최했다.


화과원 관련 용역보고회에서 ‘화과원은 독립자금을 대던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항일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역사·문화적 거점공간’이며, 이를 국가사적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발굴·연구·학술작업을 거쳐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최영호(동아대)교수는 “화과원은 독립자금을 대던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항일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역사·문화적 거점공간”이며 “이를 국가사적화하기 위해서는 중·장기플랜으로 체계적인 발굴·학술작업을 거쳐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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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수는 백용성선사의 항일민족운동, 불교개혁실천운동, 화과원의 역사문화적 성격과 위상, 국가사적승격지정을 위한 단계적 방향을 설명했다.


최교수는 “현존하는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화과원을 선농불교의 실천 ‘농장’으로 보는 제한적인 시각이 많아 아쉬웠다”며 “이는 화과원에 담겨진 훨씬 방대한 다양한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화과원(최대 147만 7274㎡)은 일제강점기 3.1운동의 민족대표로 항일민족운동과 함께 불교개혁운동을 실천한 진종 백용성 선사가 1927년 설립해 운영한 핵심적인 활동공간”이라며 “동시에 백 선사와 당대의 선지식인들이 선농 불교를 실천하면서 항일독립운동과 함께 불교의 개혁, 사원의 자립경제, 지역 빈민아동의 교육복지사업, 불교경전의 역경과 저술 등을 전개한 역사·문화적인 거점 공간”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백 선사가 한용운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해 고초를 겪었음에도 3.1운동 이후 다른 민족대표와 달리 일제의 통치정책에 포섭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그 근거로 백 선사가 출옥 직후인 1922년부터 경전의 번역을 통한 대중포교를 인식하고 입적할 때까지 불서 60여종을 출판한 것을 꼽았다.


최 교수는 “따라서 화과원은 일제강점기에 백용성 선사와 불교지식인들의 항일민족운동·불교개혁실천운동을 전개한 역사·문화적인 거점공간으로 규정해야 하며, 이를 국가사적으로 승격지정받기 위해서는 단계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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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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