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에 대해 북한에서도 의천대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월간지 금수강산 최근호(2001. 10)는 고려 11대 문종의 넷째아들로 태어난 의천이 11세에 출가해 사망한 1101년까지 불교교리의 연구와 전파에 전력을 다한 천태종의 창시자라면서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당시 송나라와 일본에서도 존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의천은 30세 되던 해인 1085년 4월 송나라에 들어가 고명한 승려 50여명을 만나 불경 교류를 했으며 1천여권의 불경을 가지고 귀국한 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속장경의 한 부분인 4천여권에 달하는 불경을 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의천이 출가한 이후 영통사에서 35년간 승려생활을 하며 천태종을 창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천의 유골이 안치된 부도(승탑)는 영통사 사찰구역 서쪽에서 서북방향으로 150여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부도들 가운데서 제일 큰 부도로 알려지고 있다.

영통사 동쪽 사찰의 중문 축대 남쪽에 있는 의천의 비(碑)인 대각국사비에는 거북 모양의 형상을 한 받침돌 위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각국사비의 총 높이는 4.5m, 너비는1.6m 이다. 비(碑)의 앞면에는 의천이 승려가 된 경위와 불교연구와 전파를 위한 활동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묘실과 비를 세우게 된 연유와 그의 제자 200여명을 승직에 따라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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