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b판시선 30번째로 하종오 시인의 ≪제주 예멘≫을 펴낸다. 이번 시집은 2018년부터 내전을 피해 바다를 건너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 이야기들이다. 세계적인 난민 증가는 이미 국제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제주 예멘인의 문제는 이제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 한반도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에 시인은 이 문제가 단순히 국제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임을 직감하고 지난해 8월부터 천착하여 완성한 시집이 바로 ≪제주 예멘≫이다.

 
문학평론가 홍승진은 이런 맥락에서 이 시집을 “디아스포라와 마주친 자에 의해서 창작된 작품”으로 난민문학이라고 명명하고, 하종오식 난민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 시집은 난민 인정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와 그런 난민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이면이 복잡하게 엮여 있는지, 차이가 어떻게 차별이 되고 강자에게 당한 약자가 어떻게 더 약한 자를 짓밟는지를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예멘인이라는 이유로 무슬림으로 취급받”는 “무슬림”은 “위험한 존재”(<위험한 존재>)가 되고, “중동에서 젊은 아랍인들이 난민으로 들어오자/일자리가 줄어들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또래들”은 “강제출국을 청원”(<중동>)하며 한때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가 돈 벌기 위해 중동에 갔다 온 사실을 잊어버린 채 “가짜 난민을 가려내야 한다”(<가짜 난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라는 시를 통해 “죄지은 죄인이 있고 선행하는 선인이 있”듯이 ‘한국인이나 예멘인’ 중에도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있고”, ‘크리스천’ ‘불자’ ‘무슬림’이라고 해서 “좋은 사람만 있지 않고 나쁜 사람만 있지 않”다며 “어디에서나 언제나 인간은 그렇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명징한 진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또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겨 마시는 원두커피의 커피콩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커피나무를 심는” 예멘에서 오래전부터 건너왔는데, 바로 그 가난한 나라의 예멘인들이 난민 신청을 해온 것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토록 맛있는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이/그토록 처참하게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곱씹으면서 “예멘 난민 찬반 집회”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흔든다.


시인은 한국인이건 예멘인이건 수 명 수십 명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곳엔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고(<나쁜 사람 착한 사람>), “나도 먹고살 것이 없던 한때/못할 짓이 없는 심정이 되어/참담한 적 있었”으니 그들이 “일해서 먹고살도록/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진정 도와주는 방법이”(<끔찍한 인간사>)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적 진술은 어떤 에두름이 없는 하종오식의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태도이다.

 
홍승진은 하종오의 이번 시집에 대해 “한국에 온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다룬 하종오의 이번 시집은 디아스포라문학이라는 범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디아스포라에 의해서 직접 창작된 작품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와 마주친 자에 의해서 창작된 작품”, 즉 “하종오의 난민문학은 ‘한국에 온 비한국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으로써 “시집 ≪제주 예멘≫은 문학사의 맥락 속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집 ≪제주 예멘≫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 “거리 좁히기”와 “거리 유지하기”의 시적 방법을 통해 “난민문학의 변증법을 탁월하게 밀고 나간 하나의 모범”이라고 단언한다.


저자 :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정≫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어미와 참꽃≫ ≪깨끗한 그리움≫ ≪님 시편≫ ≪쥐똥나무 울타리≫ ≪사물의 운명≫ ≪님≫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님 시집≫ ≪지옥처럼 낯선≫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입국자들≫ ≪제국(諸國 또는 帝國)≫ ≪남북상징어사전≫ ≪님 시학≫ ≪신북한학≫ ≪남북주민보고서≫ ≪세계의 시간≫ ≪신강화학파≫ ≪초저녁≫ ≪국경 없는 농장≫ ≪신강화학파 12분파≫ ≪웃음과 울음의 순서≫ ≪겨울 촛불집회 준비물에 관한 상상≫ ≪죽음에 다가가는 절차≫ ≪신강화학파 33인≫ 등이 있다.




제주 예멘 ㅣ 하종오 지음 | 도서출판b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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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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