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기를 온몸으로 산 사드는 미치광이였는가 혁명가였는가”
대표작 ≪규방철학≫과 혁명기 정치에세이 11편을 완역한 최고의 사드 입문서”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는 수많은 이명(異名)을 갖고 시를 썼다. 단지 여러 필명으로 시를 썼던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에게 새로운 성격과 개성과 문체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놀랍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한 생애 동안 여러 사람이 되어보고, ‘나’와 다른 수많은 인생을 살아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페소아만의 것일까? 한 작가의 경험과 그 작가만의 문체로 표현되는 문학의 영역은 좁다. 작가는 나를 완전히 잊을 줄 알고, 그 무(無)에서 새로운 누군가를 상상하고 그려내고 결국 마치 현실 속에 실제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문학 작품에서 우리는 한 명의 영웅, 한 명의 선인(善人), 한 명의 특이한 자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를, 우리를, 인류 전체를 발견해낸다.
그런 점에서 사드는 ‘이명’의 저자라는 점에서 페소아를 훨씬 앞선다. 그의 작품에서 일관된 문체, 통일적인 사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 있다. 먼저 작가로서의 야망을 가진 문인 사드가 있다. 그는 특히 극작가로 성공하고 싶어 했다. 돈과 명예가 따르는 일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문학이야 말로 그를 감옥에서의 삶도, 프랑스혁명기에서의 삶도 견뎌내게 했던 유일한 분야였다.
그러나 문인이 되고자 하는 야망은 좌절되었고 그는 곤궁과 비난을 견뎌내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혁명기에 대귀족의 후손이었던 그의 출신 성분이 의심되었다. 그가 혁명기 파리를 구성했던 마흔여덟 개 지부 중 한 군데였던 피크 지부에 참여하여 지부의장까지 지냈을 때 그를 혁명의 스파이로 의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과연 사드는 20세기 초반의 급진적 예술가들의 시각대로 ‘혁명적’이었을까? 아니면 사드는 그저 타협했던 것일까?
≪규방철학≫은 공포정치를 지휘했던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그의 귀족신분과 정치적 온건주의가 문제가 되어 다시 옥살이를 했던 사드가, 폭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석방된 이후에 쓴 저작이다. 사드는 이 작품에서 몰락한 과거의 방탕한 귀족들을 규방으로 불러내어 그들 스스로 그들만의 ‘축제’를 열어준다. 그들은 한 젊은 처녀를 유혹하는데, 그들의 목적은 그녀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그들을 닮은 방탕한 자로 교육하는 데 있었다. 그들의 ‘이론’과 ‘실천’은 어리숙한 외제니를 쉽게 그들의 지지자로 만들고, 어쩌면 그녀는 그들보다 더욱 사악하고 더욱 방종한 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끔찍한’ 이야기 뒤에 사드는 그가 창조한 귀족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감추지 않는다. 그들의 악행과 범행은 그저 그들이 갇혀 있는 ‘규방’에서나 모의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혁명이 두렵고, 분노하는 민중을 끔찍해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다.
사드는 ≪규방철학≫의 주인공들을 그렇게 조롱하고 있지만 결국 그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무력한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의 귀족 출신을 부정하는 걸까? 계급을 폐지하고 국왕을 끌어내 기요틴에 올린 혁명의 과격파와 민중의 편에 선 것일까? 확실히 아폴리네르와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사드는 어느 쪽에도 설 수 없었고, 어느 쪽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주저한 사람이 사드만은 아니었다. 사드는 구체제를 되돌리려고 하는 모든 반동적인 시도를 조롱했다. 그러나 구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삶의 형식과 정치적 이상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였다. ≪규방철학≫과 같은 해에 출간된 그의 ≪알린과 발쿠르≫에서는 어느 정도 그런 새로운 삶의 형식과 정치적 이상이 드러나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느 쪽도 진짜 사드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동시에 두 작가로 모순되기까지 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으며, 이후 ≪누벨 쥐스틴≫, ≪쥘리에트 이야기≫, ≪사랑의 죄악≫에서는 또 다른 입장을 들고 나온다. 이것이 사드를 한 가지 이념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드를 그저 흔하디흔한 포르노 작가로, 혁명의 대변자이자 투사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사드는 18세기 말의 수많은 이념과 이상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으며, 이것이 그의 문학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원천이었음이 분명하다


저자 :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1740-1814)                                               


일명 사드후작 혹은 성(聖) 후작(le divin marquis). 유서 깊은 프로방스 귀족가문 출신으로 성적 문란과 매춘부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뱅센 감옥에 12년간 감금되었다가 프랑스혁명 이후 석방되었다.
프랑스혁명기 능동적 시민의 자격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에 그의 귀족 신분과 과거의 행실이 문제가 되어 다시 투옥되었다가,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후 석방된다. 총재정부 시대에 ≪규방철학≫, ≪알린과 발쿠르≫, ≪신 쥐스틴≫, ≪쥘리에트 이야기≫ 등 그의 걸작을 잇달아 출간하지만, 풍속을 저해한다는 죄목으로 마지막으로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사드는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라는 평가로부터 구체제 특권계급의 타락상을 대변한다는 비난까지 극에서 극을 달린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사드가 구체제 문학 전통을 이어받은 동시에, 사상과 주제에서 혁신을 보였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역자 :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부교수이다. 디드로의 ≪미의 기원과 본성≫, ≪백과사전≫,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장 스타로뱅스키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사드의 ≪규방철학≫,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 등을 번역했고,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 읽기≫, ≪18세기 도시≫를 공동으로 펴냈다


규방철학|저자 :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역자 : 이충훈 |도서철판b|값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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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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