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총서 7      

우리는 아는 헤겔은 진짜 헤겔의 모습일까? ‘페이크 뉴스’로 인해 ‘팩트’마저 의심의 대상이 되는 오늘날, 한 철학자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 잘못된 신화와 전설을 만들었다는 폭로는 고루한 항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철학적 논쟁이나 논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방대하고 까다로운 한 철학자의 단편들이 핵심적 참고점이 되어 전체 사상을 규정하고 해석하는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소환되는 헤겔과 그의 사상의 처지가 그러하다.

  
이번에 <헤겔총서>의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는 ≪헤겔의 신화와 전설≫은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헤겔은 가장 어려운 저작군을 남긴 철학자 중 한 명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고 해석되어 소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아무렇지 않게 헤겔은 “전체주의 이론가”이자 “프로이센 옹호가”이며 심지어 파시즘과 친연성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또 그의 철학에는 “전쟁을 찬양했다”거나 “역사의 종말을 선고했다”거나 “모순율을 부정했다”는 식의 낙인이 찍혀왔다. 이 책의 저자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런 오해와 낙인들이다.


우리가 헤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화와 전설의 뿌리는 헤겔 철학이 가진 난해함과 이를 다루는 개론적인 강의들과 저서들에 대한 제한된 접근에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방대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던 대부분의 철학자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에, 유독 헤겔에게 집중적으로 신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헤겔의 원전에서 추출한 경구들과 도식들이 가진 강렬함이다. 예컨대 정/반/합이란 도식은 자연스럽게 헤겔을 연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것을 고집하지 않았고 불가피하게 칸트와 피히테로부터 인용하는 경우에도 비판적인 사유 때문이었다는 점은 애써 외면되어 왔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대표적인 변증법적 사상가라는 점에 있다. 멀게는 플라톤으로부터 가깝게는 니체에 이르기까지, 변증법의 논리는 본래의 의도나 맥락과는 무관하게 손쉽게 편취되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기능해온 것이 사실이다. 헤겔이 평등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도, 불평등주의자이자 전체주의자로도 해석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개념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해 고안된 까다로운 변증법의 전개과정으로부터 극히 일부만을 취하여 작위적으로 혼합한 뒤 이루어지는 인용이 얼마나 큰 오류로 낳는지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이처럼 ≪헤겔의 신화와 전설≫에 실린 21편의 논문은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 정치철학, 역사철학 등 다양한 영역들에 걸쳐 정형화되고 신비화되었던 헤겔의 고정된 이미지를 재고할 기회를 꼼꼼히 제공하고 있다. 특히 편집자인 스튜어트가 쓴 [서문]은 전체 내용을 개괄하는 안내자의 역할은 물론 헤겔철학의 계승과 비판이 주도적으로 전개되어 온 영미철학과 유럽철학에서 그것이 얼마나 문제적으로 수용되어 왔는지를 계보학적으로 상세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헤겔연구사의 개괄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다.

 
헤겔은 한때는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다른 한때는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보수철학의 대표자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들과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헤겔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보다 정확한 ‘헤겔 입문’을 위한 디딤돌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 : 존 스튜어트 (엮음)

키르케고르와 헤겔의 사유를 중심으로 19세기 대륙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자 철학사가. 코펜하겐 대학의 쇠렌 키르케고르 연구센터 부교수로서 키르케고르 연구 총서의 편집 책임을 맡았으며, 현재는 슬로바키아 과학원의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헤겔 정신현상학의 통일성: 체계적 해석≫, ≪키르케고르의 재고된 헤겔과의 관계≫, ≪관념론과 실존주의: 헤겔과 19·20세기 유럽철학≫, ≪철학서들에서 내용과 형식의 통일: 정합성의 위기≫ 등이 있다.


역자 : 신재성       
한신대학교(전산학)와 동국대학교(사회학)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대안학교 <더불어가는배움터길>에서 길잡이 교사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헤겔의 시민사회?국가론의 재고찰>, <스피노자의 정치이론: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으로>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탈산업사회에서 포스트모던사회로≫(공역)가 있다.





헤겔의 신화와 전설 ㅣ 존 스튜어트 (엮음) 지음 | 신재성 옮김 | 도서출판b |

값 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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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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