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 한 사람 한 사람을
높은 밤하늘에서 고고하게 빛나는 별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 별들이 위치한 하늘 전경의 모습을 그려 보려고 한다.
고승의 인품처럼 빛나는 큰 별 주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잔별들의 모양과 위치
또는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혜성
그리고 땅 위의 모래알만큼 많은
은하계의 별들에 대하여 스케치하려는 것이다

혜안 서경수 교수의 입적 32기를 맞아 『기상천외의 스님들』이 도서출판 효림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서경수 교수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연재했던 글들 가운데 특히 우리나라 고승들에 대해 쓴 글들을 뽑아 연대별로 엮은 선집選集으로, 원효대사부터 혜월스님까지 11분의 고승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서경수 교수는 위대한 종교인으로 살아간 고승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이 책에서 가능한 한 전설과 일화적 요소를 배제해가면서 흐려져 가던 사상과 진면목을 생생하게 재조명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자는 가장 슬픈 장면에서 만인을 웃기고, 만인이 웃으며 기뻐할 때 제일 슬픈 표정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미치광이란 칭호도 달게 받는다. 그들이 등장하는 무대의 시간과 공간은 비극도 희극도 없는 완전한 ‘허무’다. 비극도 희극도 없는 허무의 무대 위에서 연기자는 최고로 멋있는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스님들, 원효 · 도선 · 나옹 · 신돈 · 활해 · 허주 · 영산 · 환옹 · 경허 · 수월 · 혜월 스님 같은 이들이 그처럼 위대한 연기자 아니었을까. 죽음과 삶을 넘어선 고승들에게 비극과 희극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은 비극도 희극도 없는 완전한 허무의 무대 위에서 멋진 연기를 하며 살다가 간 것이다.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거리낌 없이 무애의 행을 펼친 원효대사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추앙받게 된 까닭
중국 천하를 두루 다니며 도력을 크게 떨친 나옹선사
성승과 요승의 두 얼굴을 동시에 갖춘 이면불二面佛 신돈辛旽
마음의 옷을 모두 벗은 나체도인 활해선사
욕심 많은 제자를 깨우치고자 소의 모습으로 끌려다닌 허주스님
거지와 가난한 이를 위한 자비보살 영산스님
궁녀도 강도도 같은 마음으로 대한 환옹선사
언제나 매를 자청한 대도인 경허선사
오가는 길손을 위해 마지막 삶을 다한 수월선사
무심의 대자비가 넘치는 기이한 산술법의 영원한 어린 도인 혜월선사

이 11분의 스님은 하나같이 민중에게는 한없는 자비를, 시비와 분별을 가리며 불교의 이치를 물어 오는 어리석은 수도자에게는 초상식적 언행과 벼락같은 호통으로 응수했다. 그들은 오직 대자비행의 불교에 미친 연기자였다.

저마다 자기만을 위하며 혈안이 되어 사는 현대에, 도리어 남만을 위하여 혈안이 되었던 고승들의 이야기는 종교가 진정 이 시대에서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출생 · 죽음 · 출가 · 무애 · 천진, 종교인이 지향해야 할 바른 삶 등의 직간접적으로 깨우쳐주고 있으며, 아울러 서경수 교수 특유의 필력으로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회의 모습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도 짐작하기도 어려운, 이 땅에서 무애하고 기상천외하게 살다 가신 스님들의 발자취를 좇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는 별처럼, 이 책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밝혀줄 것이라 감히 확신해 본다.



저자 서경수

1925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문리대 종교학과를 거쳐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가슴까지 뒤덮은 은백색 수염과 뿔테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빛〔慧眼〕 혜안 서경수 교수는 특이한 외모만큼 행적도 남달랐다. 국내 최초로 『인도불교사』를 출간했으며 영어와 산스크리트어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인도에서 5년 동안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 등을 가르친 인도철학자로 인도 네루대 최초의 한국학 교수이기도 하다. 동서양 종교 비교연구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기독교에서 개종한 경력은 불교와 기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하게 만들었다.

인도 네루대를 거쳐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활동하던 1970-80년대, 그는 불교학 연구풍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기독교와 불교 비교,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불교 등의 논문과 글들을 발표하여 불교학 연구의 지평을 확대한 것이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초대 교수, 불교신문사 주필로 알려져 있는 그의 저서로는 불교와 인도에 대해 수필 형식으로 쉽게 풀어쓴 『세속의 길 열반의 길』 『열반에서 세속으로』 『불교를 젊게 하는 길』 『인도 그 사회와 문화』 등이 있으며 『한국 근대 불교 100년사 자료집』도 편찬하였다. 이기영 선생과 함께 한국불교연구원을 창설하여 재가불교운동과 한국불교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불교신문사 주필 시절에는 대학생들의 불교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이 『붓다께서 가리킨 길』은 서경수 교수의 저작집 완결판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의 학문과 지성이 30년 뒤인 지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불교를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서로는 『세속의 길 열반의 길』 『인도 불교사』 『인도 그 사회와 문화』 『불교를 젊게 하는 길』 『기상의 질문과 천외의 답변』 『열반에서 세속으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미란다팡하』 『히말라야의 지혜』,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불교 백 년사」 「신라 초기 교단 형성의 연구」 「신돈과 보우」 「고려시대 거사불교의 연구」 「조선사찰령 연구」 「법화경과 Bhagavadgit?」 등이 있다.





기상천외의 스님들 ㅣ 서경수 지음 | 효림출판 | 값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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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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